“자기가 무슨 황영조, 이봉주 선수쯤 되는 줄 아나 봐? 아이고, 손기정 선생님이 기특하다 하시겠다.”

현관에 앉아 운동화 끈 매고 있는데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거린다. 남편이 건강을 위해 달리기 좀 하겠다는데 왜 이러는 걸까?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미친’ 러너들이 사랑하는 계절, 유월 장마가 시작됐던 것이다. 비 올 때 달리러 나가는 그 기분 아는가. 머리에 쌓여있던 복잡한 생각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말끔함, 세상의 금기를 깨는 것 같은 황홀함.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러너들은 그것을 우중런(雨中run)이라 부르며 사랑한다.

“또 감기 걸려 골골거리지 말고 적당히 뛰고 와.” 감기는 무슨. 이 몸이 이래 봬도 영하 15도에서 ‘알통 구보’하던 강철 군인이었다! 속으로만 삼키고, 현관문을 열고 나선다. 거리에 쏴~ 빗줄기가 날린다.

내가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때는 몸 안의 민주주의와 지방자치가 극성을 부릴 때였다. 등허리는 언제나 푹신한 소파를 찾았고, 입술은 간(肝)의 사정은 살피지 않고 매일 밤 술잔과 어울렸다. 편의점이 생각보다 육체노동이 많은 업종이긴 하지만, 그래도 온종일 실내에 머문다. 몸무게는 몇 차례 앞자리를 갈아치웠다. 어느 날 결심하고 동네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트레드밀 위를 코뿔소처럼 쿵쿵 뛰고 있는데 개그맨 김병만씨처럼 체격이 다부진 관장님께서 다가와 말씀하셨다. “체중부터 빼셔야것시유. 그러다 무릎 나가유.” 욕심을 내려놓고 걷기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진화한 것이 달리기. 처음 아내에게 내세웠던 명분은 “돈 안 드는 운동”이라는 주장이었다. 아내도 수긍했다. “주말에 남편이 골프장에만 죽치고 있는다고 당신 친구들이 투덜거리잖아. 달리기는 얼마나 좋아. 공짜지, 시간 뺏지 않지.” 성실한 남편을 두었다는 표정으로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뛰어보니 내가 100미터만 달려도 숨이 차는 이유를 알았다. 셔츠와 팬츠였다. 석촌호수를 쌩쌩 달리는 건각(健脚)들을 보니 위아래 운동복을 말끔히 갖춰 입고 있었다. “여보, 내가 옷 때문에 달리기가 안돼.” 아내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깟 운동복이 몇 푼 되겠느냐는 표정으로 지출을 허락했다. 스포츠 용품점에 달려가, 특수 소재로 만들었다는 최고급 셔츠와 팬츠를 구입했다. 주인장 조언에 따라 여러 벌 샀다. 달리기 전용 모자를 사고, 전용 양말, 물통, 선글라스, 휴대폰을 담아둘 가방까지 구입했다. 쇼핑백 한가득, 나는 그렇게 ‘러너’로 다시 태어났다.

보름쯤 지나 역사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500미터만 달려도 땀을 흘리는 것은 운동화 때문이었다. “여보, 운동화가 나쁘면 몸이 망가진대.” 충격과 공포의 기법으로 아내를 설득했고, 스포츠 용품점 사장님은 집 나간 동생이 돌아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그날 쇼핑의 하이라이트는 운동화가 아니라 시계였다.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가 신었다는 과학적 러닝화를 추천한 주인장은 내가 500미터만 달려도 땀이 나는 또 다른 이유로 “기록을 측정해주는 전용 시계가 없는 점”이라는 과학적 진단을 내려줬다. 러닝화보다 3배 비싼 GPS 시계를 손목에 차고 집에 돌아와 나는 그것을 ‘사은품’이라고 엉겁결에 둘러댔고, 덕분에 아내의 손자국을 등짝에 새겼다.

달리기는 공짜고 시간을 뺏지 않는다고?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두세 달 지나, 내가 1킬로미터만 달려도 목이 마른 이유를 알았다. ‘대회’에 참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세상엔 마라톤 애호가가 어찌나 많은지, 각종 대회도 주말마다 열린다. 수도권은 물론 대전, 군산, 춘천, 부산, 심지어 제주까지, 삼천리 방방곡곡을 누비며 대회에 나갔다. “차라리 골프가 낫겠다. 아주 마라톤 프로 선수 되시겠네!” 아내의 군소리를 뒤로 하고, 새벽 별 보며 집을 나섰다. “달릴 때는 내가 없어져요. 근데 그게 진짜 나 같아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명대사를 떠올렸다. 지금 우리 집엔 대회에서 받은 기념 셔츠와 메달로 박스 하나가 차고 넘친다.

익살스레 글을 쓰다 보니 세상 철없고 나쁜 남편이 된 느낌이지만–사실이 그렇긴 하다–1년쯤 지나 나는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는 러너가 되었다. 아내는 그러한 변화에 누구보다 기뻐하고 응원해주는 개인 트레이너이자 스폰서가 되고 있다. 처음엔 무릎이 좋지 않아 걷기만 하던 아내도 올가을엔 대회에 나가겠다고 참가 신청서를 쓰는 중이다. 초보자에게는 5킬로미터가 무난하대도 기어이 10킬로미터에 도전하겠단다.

코로나19로 이름 있는 마라톤 대회는 모두 취소되고 각자 휴대폰 들고 아무 데서나 달리는 ‘1인 대회’를 치른 지도 벌써 3년째. 러너들이 ‘가을의 전설’이라 부르는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이 오는 10월 23일 열린다는 소식이다. “자, 출발!” 하는 구령과 함께 수만 명이 한꺼번에 달려 나가던 예년의 감동을 올해는 재현할 수 있을는지. 경의선 철마는 달리고 싶고, 러너들의 춘마(춘천마라톤)도 올해는 궤도를 되찾고 싶다. 이번엔 아내와 함께 달리기로 약속한 대회라서 더욱 뜻깊은 추억이 될 것 같다. 마음은 벌써 단풍이 물든 소양강변을 달린다. 춘마는 붉게 달리고 싶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