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엘케 하이덴라이히의 ‘나로 늙어간다는 것’에는 “나는 뭐든 가짓수를 줄이고 집중하려 애쓴다”는 문장이 있다. 저자는 신문 전체를 급히 훑지 않고, 읽고 싶은 기사를 끝까지 읽고, 리모컨을 이리저리 누르지 않고 영화를 끝까지 본다. 이것이 속도에 맞서는 자신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해 현기증 나게 빨라진다. 나 역시 이제 많이 읽기보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다. 양보다 깊이를 파고든다. 비문증과 노안이 생긴 뒤, 점점 느려진 내 세계를 안경 닦듯 조율하는 방식이다.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는 노년을 ‘학살’이자 ‘끝없는 박탈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것’만을 한탄하며 과거에만 매달린다면 우리는 진짜 노인이 될 뿐이다. 이 상황의 유일한 해독제는 바로 ‘지금’이다. 전력 질주는 힘들어도 빠르게 걷기는 가능하고, 흰머리는 늘었지만 심각한 탈모가 아닌 것에 감사하는 마음. 연애는 어렵지만 돋보기를 쓴 채 연애 소설을 읽는 지금의 고요하고 적요한 시간. 저자가 ‘쾌활한 체념’이라고 부르는 이런 태도가 바로 온전히 현재를 사는 지혜이다.

누구도 살아보지 않은 나이를 함부로 예측할 수 없다. 달리는 자동차에서 보는 풍경과 천천히 걸으며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이 다르듯, 어떤 삶의 속도가 더 좋은지 나쁜지 말할 수도 없다. 그러니 자신의 보폭에 맞는 적당한 가속과 감속이 필요할 뿐이다. 타인과의 비교 버튼을 끄고 나만의 쾌적한 온도와 속도를 찾아야 한다. 더우면 벗고, 추우면 입고, 때로는 힘내고, 힘들면 쉬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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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 놀이를 해본 어른은 알 것이다. 아이가 얼마나 반복을 좋아하는지. 같은 동화책을 몇 번씩 읽어도 지루해하기는커녕 새 이야기를 만난 듯 심취하는지 말이다. 아이들의 뇌에는 정말 리셋 버튼이라도 달린 걸까.

내가 어렵게 알아낸 아이들의 ‘행복의 비밀’은 ‘지루함을 편안함으로, 불행을 다행으로’ 바꿔 부르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타고났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작은 차이를 발견하고 매번 기뻐한다. 어른에게는 지겨운 반복이 아이에게는 안정감을 준다. 뇌 과학자들에 의하면 반복은 뇌의 시냅스 연결을 강화해 전전(前前)두엽을 발달시킨다. 어른은 크면서 효율을 위해 삶을 패턴으로 이해하지만, 아이는 발달 과정에서 작은 차이를 찾는 데 천부적이다. 그 차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몬테소리는 “아이는 반복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반복은 예측 가능성을 만들고 안정감을 주며, 미지의 것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고,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이때 아이는 학습과 탐색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다. 오히려 새로운 놀이공원, 키즈 카페, 게임 등에 집착하면 아이의 도파민 시스템은 망가진다. 계속 더 강한 자극만 찾고, 소소한 독서나 산책엔 흥미를 잃는다.

어쩌면 우리는 실수하고 있는 게 아닐까. 뇌 발달에 꼭 필요한 아이의 반복적 요구는 힘들어하면서, 아이에게 새로운 걸 경험시키는 데만 몰두하는 건 아닐까. 아이가 같은 동화책을 읽자고 말할 때, 같은 동작을 몇 번이고 해달라며 조를 때, 귀찮아하지 말고 아이의 뇌가 자라고 있다는 신호로 이해하면 어떨까. 모든 반복은 특유의 리듬을 만든다.

불행을 다행으로 호명하는 순간 매사가 감사의 은총이 된다. 반복과 지루함을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어릴 적 잃어버린 순수한 기쁨을 되찾을 수 있다. 그렇게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른의 그것에 비해 얼마나 아득히 낮은가. 그러나 감사와 기쁨은 가장 작고 약한 것들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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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AI 안경 없으면 인지적 불리할 것"


메타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앞으로 우리들은 개인화된 AI(인공지능) 동반자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 AI가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며 인간의 일상을 바꿀 것이라는 예상이다.

저커버그 CEO는 15일 테크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 인터뷰에서 “초지능(super intelligence)은 위대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좀 더 단순하고 개인적인 문제에 AI를 활용하고 싶어한다”며 “초지능은 수십억 명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초지능은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AI를 말한다.

저커버그는 변화될 삶의 예시로 AI가 적용된 스마트 안경을 들며 “미래엔 AI 안경이 없는 사람은 현재 시력 교정 안경이 없는 사람처럼 인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예컨대 대화를 통해 생각만 했던 일을 AI 안경이 나중에 상기시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돕는다는 것이다.


저커버그는 AI 기술 경쟁에서 인재 확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2~3년 내 초지능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한다”며 “50~70명의 핵심 연구자를 얻기 위해 모든 걸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메타는 초지능 개발을 위해 인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경쟁사인 오픈AI 연구원들을 대거 영입하고, AI 스타트업을 아예 인수해버리는 식이다. 그는 ‘인재 영입에 1억~2억달러를 쓰고 있느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숫자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원하는 소수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고 했다. 메타는 ‘하이페리온’ 등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건설 중이다. 그는 “이런 대담한 투자가 가능한 회사가 결국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전력 질주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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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지혜’라는 별명의 움베르토 에코(1932~2016)는 노년에도 인터넷과 PC에 능숙했다. 생전에 그를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책과 인터넷’을 주제로 BBC 다큐를 찍는 중이었는데, 2층 난간에서 종이책과 함께 킨들(전자책 리더)을 1층 바닥으로 던졌다. 쾅 소리와 함께 킨들은 부서졌지만, 종이책은 약간 구겨졌을 뿐 멀쩡했다. “작위적인 퍼포먼스 아니냐”는 말에 그는 “우스꽝스럽겠지만 진실을 담고 있소. 책이 사라질 거라 하지만, 인터넷도 사라질 수 있소”라고 했다.

▶최근까지 열풍이던 컴퓨터 관련 학과 인기도 그렇다. 2005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의 컴퓨터학과 정원은 네 배 증가했다. 실리콘밸리의 입도선매 소식도 이 시기였다. 하지만 상승 곡선이 꺾였다는 뉴스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카네기멜런대의 이 학과 취업률은 2년 전까지 400%였다. 한 사람이 4~5곳에 붙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50%로 감소했다고 했다. 프린스턴대의 루신키에비츠 컴퓨터학과장은 2년 안에 졸업생 수가 25% 감소할 것이라 예측했고, 듀크대의 이 전공 입문 과정 등록자 수는 최근 1년간 실제로 20% 줄었다.

▶침체의 주범은 AI다. 인공지능은 글쓰기도 잘하지만, 더 잘하는 게 컴퓨터 코딩이다. 대학생들은 초보 IT 개발자의 암울한 취업 전망을 누구보다 빨리 체감하고 있다. 실력 있는 중견 엔지니어가 코딩 AI를 활용하면 어설픈 초보 개발자와 일하는 것보다 몇 배 생산성이 오른다는 경험담이 속출하고 있다. 구글과 MS는 이미 전체 25%의 코딩을 AI에 의존한다.

▶AI 시대, 어느 전공인들 보장이 있을까. 역사를 전공한 미래학자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했다. “수학과 과학 등 개별 과목을 가르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런 공부는 AI가 훨씬 더 잘할 테니까. 지금까지 인간은 20대까지 공부한 걸로 평생 먹고살았지만, 앞으로는 나이 예순에도 여든에도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뭘 새로 배워야 할지는 알 수 없다. 단, 경직되어 있는 사람, 마음이 유연하지 않은 사람은 버티기 힘들 것이다.”

제프 다이어의 재즈 에세이 ‘그러나 아름다운’ 중에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일단 시작하면 모든 게 예상외로 순조로이 진행될 거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시작이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때로 그것은 정말 볼품없이, 아주 아무렇게나 시작된다.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몇 대에 걸쳐 완성되는 대성당도 실은 식당에서 휘갈기듯 스케치한 작은 이미지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가볍게 시작해서 저절로 쌓여 가는 것들이 좋다. 너무 힘주고 각 잡고 앉아서 만든 것보다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처럼 찾아오는 게 좋다. 그러니 일단 앉아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작하면 될 일이다. 누가 처음 한 말인지는 몰라도, 시작이 반이라는 말만큼 옳은 말도 없다.

이난주작가와

이다경작가와

강세윤작가와

김주호작가와

이승정작가와

남아영작가와

청년의 집은 물에 잠기기 시작했고, 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이 함께 고지대로 올라가자고 했다. 청년은 “신이 저를 돌봐줄 것입니다”라며 거절했다. 몇 시간 후 빗물이 청년의 집 1층을 집어삼켰을 때, 배를 타고 지나가던 선장이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청년은 “신이 저를 돌봐줄 것입니다”라며 거절했다. 집은 완전히 물에 잠겼고 헬리콥터를 타고 지나가던 조종사가 청년에게 육지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청년은 신이 돌봐줄 거라며 거듭 제안을 거절했다.



- J.D. 밴스 ‘힐빌리의 노래’ 중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신앙심 깊은 청년의 집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이웃이 차를 태워주겠다고 했고, 선장이 보트를 몰고 왔으며, 헬기까지 날아와 구조를 제안했다. 하지만 청년은 신이 구해줄 거라며 세 번 다 기회를 거절했다. 그러고 끝내, 그는 물에 빠져 죽었다. 하늘나라에 간 청년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신에게 따져 물었다. 그러자 신이 대답했다. “나는 너를 위해 차도, 배도, 헬기도 보냈다. 네가 죽은 건 네 탓이니라.”

‘힐빌리의 노래’의 저자 J.D. 밴스는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알코올과 마약, 폭력과 빈곤이 만연한 환경이었지만 그의 외할머니는 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말했다. 그 가르침은 밴스가 가난과 무력감의 굴레를 끊고 미국의 부통령이 되기까지 그의 삶을 이끈 신념이 되었다.


삶은 우리를 자주 시험한다. 지붕 위에 고립된 것 같은 날들. 모든 것이 잠겨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그때마다 우리는 남 탓, 세상 탓을 한다. 지지리 복도 없다며 한숨을 쉬거나 어디선가 짠, 하고 영웅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라 믿으며 이 악물고 어려움을 참기도 한다. 하지만 원망과 분노, 기다림과 인내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너무 캄캄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조차 현실은 훨씬 희망적일지도 모른다. 위기가 왔다는 건 이곳을 떠나 저곳으로 갈 용기를 낼 시간,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기회다. 기적은 무릎 꿇고 앉아 기도만 한다고 일어나지 않는다. 구원이란 희망을 품은 인간이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 벌떡 일어나 발로 뛰고 손으로 선택할 때 만들어지는 놀랍도록 반가운 결과다.

‘레오 1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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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감추거나 파괴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트람블레이를 교황으로 뽑는다?” “더 나쁜 교황도 있었잖아요.” 로멜리는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증 때문에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슬픈 일입니다, 알도. 정말로, 저는 국무원장께 다섯 차례나 투표했어요. 교회를 이끌어갈 적임자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제 보니 콘클라베가 역시 지혜롭군요. 추기경들이 옳았어요. 내가 틀렸고. 원장은 교황이 될 용기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예, 이제 떠나드리죠.” - 로버트 해리스 ‘콘클라베’ 중에서

지난 22일, 교황이 선종했다. 장례가 마무리되고 애도 기간이 끝나는 5월 초, 바티칸에서는 새로운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가 열린다. 12년 만에 열리는 이번 콘클라베는 추기경 135명이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하루 두 차례씩, 3분의 2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투표를 반복한다. ‘열쇠로 잠근다’는 뜻을 지닌 콘클라베는 13세기부터 이어진 전통으로, 선출이 완료될 때까지 모든 과정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는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선거를 위해 모인 추기경들은 하나같이 청렴하고 순결해 보인다. 그러나 밀실 안에서 벌어지는 것은 신 앞에 무릎 꿇은 인간들의 치열한 권력투쟁이다.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 성 추문과 금권 거래, 성직 매수 등 유력 후보자들의 부정부패가 종교의 성스러움이란 장막 아래서 소용돌이친다.


콘클라베를 주관하는 로멜리 추기경은 믿었던 동료조차 비리에 눈감으려는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그는 교회의 양심을 지키고자 자신이 교황이 될 수 있던 기회도 포기하고, 공정한 선거를 위해 성심을 다한다. 하지만 그렇게 선출된 교황은 과연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였을까.

변화의 바람은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불지 않는다. 세상은 늘 인간의 이해 너머에서 뜻밖의 결과를 만들어 내고, 기대가 꺾였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때 인간은 그것을 신의 뜻, 우주의 섭리라 부른다. 하늘은 인간의 소원을 다 알까. 수많은 욕망과 기도가 교차하는 세상에서, 신은 과연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까.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도 어쩌면 야망과 이상, 소망과 좌절 사이를 끝없이 오가는 인간의 모순을 품은 고백은 아닐까.




1616년 4월 24일 나는 스페인의 어느 바람 부는 마을 풍차 앞에 서 있다. 어제 4월 23일 영국에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스페인에서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각각 영면(永眠)에 들어 나란히 인류 문학사, 문화사에서 영생(永生)을 얻었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극장과 그 주변에서 큰 굴곡 없이 살았다. 반면 세르반테스의 인생은 국제적 파란만장의 끝판왕이었다. 레판토 해전에 참전해 열병에 걸리고, 총상을 입어 왼손의 기능을 상실했다. 세금 징수원, 죄수, 군인, 포로, 노예 등등 그가 거쳐가야 했던 팔자는 ‘골 때린다’. ‘돈키호테’를 처음 구상한 것도 감옥 안이었다. BC 1000년경 고대 그리스 신화를 기원의 하나로 본다면 서양 문학(사실상 현재의 세계문학)의 역사는 대략 3000년쯤 된다. 20세기 가장 영향력이 있는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단테 이후 서양의 중심 작가는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였으며 톨스토이, 괴테, 디킨스, 프루스트, 조이스도 이 둘에 못 미친다”고 평했다.


저렇듯 달랐던 둘이지만, 저 둘의 문학 안에는 인류 근대문학의 선구자적인 공통점이 있다. ‘돈키호테’가 최초의 근대소설이라면 셰익스피어는 희곡과 연극의 근대성을 확보했다. 제 삶에 스스로 이름을 부여하는 돈키호테처럼, 셰익스피어 비극 속 인물들에는 개인으로서 성격적 결함이 있고 그것은 능력과 낭패(狼狽)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예컨대 돈키호테와 햄릿은 신이 확정한 운명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과 환경에 휘둘린다. 돈키호테와 햄릿은 한 인간 안에 함께 서식한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정체성의 갈등과 충돌 때문에 일생 시달리다가 후회 속에서 죽어간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 두 작가가 태어난 날은 달라도 같은 날 죽었다는 것은 재미와 의미 이전에, 묘하게 상징적이다. 풍차는 풍차일 뿐, 그 앞에 선 인간이라는 왜소하고 고독한 괴물이 있다.

오감(五感)이라는 표현이 워낙 익숙하게 쓰여 사람의 감각도 다섯 가지가 전부인 줄 아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사람이 느끼는 감각은 그보다 훨씬 범위가 넓다. 그중 평시에는 인지하고 있는 줄도 잘 모르지만 무척 중요한 감각 중 하나가 신체의 위치, 자세, 움직임, 힘 등을 느끼는 ‘고유감각’이다. 용어는 낯설어도 개념은 쉽다. 내 몸의 부속들이 제각기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인식하는 정상성(正常性)에 대한 감각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좇지 않아도 젓가락으로 집은 음식이 내 입에 무사히 안착하는 건, 무의식 중에도 내 손과 입의 현재 위치를 알고 있어서다. 계단을 오를 때 애써 발밑을 살피지 않아도 우리는 무릎을 알맞은 정도로 굽혀, 발을 적당한 높이로 들어 올릴 수 있다. 발이 대략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고유감각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인체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 자체가 고유감각 덕분이라고 볼 수이다
우리의 존재에는 모든 것이 표현으로 의미를 부각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재 인식하는 시간이었다

쳇gpt강훈군

(조선일보 윤희영의 글)
역발상(inverse thinking)을 하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새해 결심(New Year’s resolution)에 그런 역발상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하고, ‘덧셈(addition)’이 아니라 ‘뺄셈(subtraction)’을 하면 삶의 무게는 줄어들고 질은 높아진다.

‘잠자리에서 게임하지 말 것’부터 ‘뒷담화하지(talk behind others’ backs) 않기’ ‘다른 사람 원망하지(blame others) 말 것’ ‘시기하지(be jealous of others) 않기’ ’쓸데없는 불평(useless complaint) 하지 말 것’ 등 도움 되지 않거나 짐 되는 행위(unhelpful or burdensome behavior)를 “새해부터는 하지 않겠다”고 작정해보라는 얘기다.

행복 연구 전문가인 미 하버드 대학교 아서 브룩스 교수는 이 같은 정반대 접근 방식을 주장한다(argue for the opposite approach). 덧셈이 아니라 뺄셈에 집중해야 행복해진다고 설득한다. 현명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이 멍청한 짓거리를 피하는(avoid doing dumb things) 일인 것처럼, 즐거움을 좇는(chase after joy) 것보다 괴로움·불쾌감 주는(cause pain and discomfort) 요소를 제거하는 편이 더 이롭다고(be more beneficial) 말한다.

그러려면 ‘to-do list(해야 할 일 목록)’와 별도로 ‘to-don’t list(하지 말아야 할 일 목록)’도 만들어봐야 한다. 우선 나쁜 습관, 의무감, 남들의 기대감 탓에 어쩔 수 없이 해온(do out of bad habits, obligation, or others’ expectations) 것들을 적어본다. 실연한 젊은이들(lovelorn young people)이 한창 좋았던 연애 시절에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며 어렵사리 깨닫는(learn the hard way) 것과 닮은 과정이다.

예를 들어 “‘감정 흡혈귀(emotional vampire)’와 시간 보내지 말 것”도 있을 수 있다. 기운 빠지거나 우울하게(feel drained or depressed) 하는 사람과는 접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부정적인 얘기 듣지(listen to negative talk) 않기”는 비관적이거나 좌절감 주는 대화에는 아예 끼지(engage in pessimistic or frustrating conversation) 않겠다는 것이고, “완벽한 시간 기다리지 말기”는 사람·사물·환경이 시시각각 변화하는데 이제나저제나 하며 허송세월하지(waste time)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는(strengthen the will) 것이다.


“모든 것을 단번에 정복하려(conquer everything in a single leap) 하지 말 것” “과거 문제에 집착하지(dwell on past problems) 말 것” “모든 것에 매달리지(hold on to everything) 않기” “항상 나만 옳다고(be right) 우기지 말 것”.

‘to-don’t list’는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hold you back) 행위·습관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이다. 그래야 비생산적·소모적 상황에 휘둘리지(be swayed by unproductive and wasteful situation) 않고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해 가장 효율적으로 재능을 ‘올인’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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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말에서 ‘쏜살’은 ‘활로 쏜 화살(an arrow fired from a bow)’을 뜻한다. 영어에도 똑같은 표현이 있다. ‘Time flies like an arrow.’
새 밀레니엄(millennium·1000년)을 앞둔 1999년, 전 세계는 Y2K(Year 2000) 공포에 떨었다(tremble with fear). 2000년으로 넘어서는 순간 컴퓨터에 인식 오류(recognition error)가 생겨 대혼란을 야기할(cause a pandemonium)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4년이 지났다. 며칠 후면 2025년이다.
시간에 대한 인식·지각(time perception)은 상대적이다(be relative). 나이가 들수록(get older) 빨라지는 것처럼 보인다(seem to accelerate). 일곱 살 아이와 70세 노인에게 365일 기준 3153만6000초, 52만5600분, 8760시간, 1년 길이는 똑같아도 속도는 다르게 느껴진다. 즐겁고 재미있을(have fun) 때 시간은 금방 지나가지만, 힘들고 단조로운 일(drudgery work)을 할 때는 질질 늘어진다(drag on). 너무나 힘겨운 순간엔 마치 정지해 있는(stand still) 듯하다.
중년 문턱을 넘어서면(cross the threshold of middle age) 어릴 때와 달리 시간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기 시작한다(begin to speed up rapidly). 노년에 들어설(reach old age) 즈음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pass in the blink of an eye)”고 되뇌게 된다. 그 이유는 나이가 들면서 신경망(網·neuron network)이 늘어나고 복잡해져(become more complex) 신경 처리(neural processing)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as a result), 시각 정보 처리가 늦어지면서 머릿속으로 기억되는 심상(心象·mental image)이 줄어들어 시간 감각이 달라진다고 한다.
시간 대비(對比) 삶의 기간 비율(time-to-life ratio)에 따른 현상이라는 설도 있다. 다섯 살 아이에게 1년은 살아온 전 생애(entire life)의 20%인데 비해, 50세 어른에겐 2%이기 때문에 훨씬 빨리 지나가는(go by much more quickly)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다섯 살짜리에겐 급속한 성장(rapid growth)·변화·배움·발달 등으로 꽉 차서 기나길지만, 50세에겐 48·49세 때와 달라진 게 별반 없으니 휙 지나가는(fly by) 것 같다는 얘기다.
시간 길이에 대한 지각은 경험을 하는 순간에 존재하느냐, 아니면 시간을 되돌아보고 있느냐(look backward on time)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시간을 천천히 가게 하려면(in order to make time slow down) 지금 이 순간을 잘 챙겨야(be mindful of the present moment)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나 때는 말이야” 하면서 라떼 커피만 마시고 있으면 시간이 후루룩 더 빨리 흘러버린다고 한다.
세상을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살라고 한다. 삶의 경이로움에 주목하며(take note of life’s wonders) ‘지금’ ‘여기’에 몰두하다 보면 시간도 구경하느라 함께 머물러준다는 얘기다. ‘인생은 짧다’라는 말의 참뜻은 ‘그러니까 빨리 무언가를 하라’는 것이라고 한다. (조선일보 윤희영 글)


https://youtube.com/shorts/wdEcy-dZTfU?si=6YFp-0cS20k6IgxF

 

 

“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며,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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