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com/shorts/wdEcy-dZTfU?si=6YFp-0cS20k6IgxF

 

 

“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며,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난지한강공원에서 

 

 

“더우면 시원한 마음으로 식히고(cool down with a cool mind), 추우면 따스한 가슴으로 덥혀라(warm up with a warm heart).”-아잔 브라흐마(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출신 불교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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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쾌락주의자인 에피쿠로스의 삶은 윤택하지 않았다. 그는 아테네 바깥의 정원을 하나 사서 진정한 즐거움을 좇는 자들을 불러들였다. 이곳에는 노예에서 거리의 여인들까지 온갖 사람이 섞여 있었다. 일종의 ‘히피 공동체’였던 셈이다. 진정한 즐거움을 찾기 위해 세상의 아웃사이더들이 ‘쾌락의 정원’에 모였다고 하니, 야릇한 상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에피쿠로스 공동체는 금욕주의자들 모임에 가까웠다. 그는 “하루에 음식을 장만하는 데 1므나(고대 귀금속 중량 단위)의 돈도 쓰지 않고 포도주 4분의 1리터만으로 만족하면서, 그나마 대부분은 물만 마시며” 지냈다. 지금으로 치자면 만원 정도로 하루를 꾸린 셈이다. 쾌락주의자인 에피쿠로스는 왜 그토록 검박하게 일상을 살았을까?

“욕구는 채울 수 있어도 탐욕은 만족시킬 방법이 없다.” 이 말은 에피쿠로스 공동체의 캐치프레이즈와도 같다. 우리는 배고플 때 먹고 졸릴 때 잔다. 이렇게 ‘욕구’를 채우며 고통을 잠재울 때 우리는 진짜 쾌락을 누린다. 그렇다면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화려하고 좋은 곳에서 자고픈 바람은 어떨까? 이때부터의 즐거움은 되레 고통이 된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누려도 그 이상을 바라게 되는 탓이다. 고삐 풀린 욕망은 금세 ‘탐욕’이 되어 버린다. 더 좋은 것을 가진 이들에 대한 질투와 시기,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으로 마음은 편안할 날이 없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일상을 검소하게 꾸려나갔던 거다.

어느 시대에나 절제와 검약은 중요한 생활 덕목이었다. 아낄 줄 모르고 내키는 대로 사는 어린아이를 떠올려 보자. 아이가 과연 나중에 견실하게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욕망 다스리기’가 전통적인 교육에서 빠지지 않았던 이유다. 하지만 지금은 절약보다 소비가 미덕이 된 듯하다. 시장은 탐욕을 채우는 삶이 멋지다며 우리를 부추긴다. 하지만 더 많이 누릴수록 가슴이 되레 헛헛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에피쿠로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볼 일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북한산에서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壁隙風動),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침범해요(心隙魔侵). 

틈이 무엇인고 하니 분열이라.”

 

 



[일사일언] 인생의 작전타임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우주의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는 빛의 속도로 달려도 930억 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 공간을 채우는 별의 숫자는 6000해(垓) 개에 이른다. 해는 0이 20개가 있는 엄청난 숫자다. 우주 전체로 볼 때 지구는 모래 한 알보다도 작다. 그 위에 사는 우리는 티끌 위에 놓인 미미한 존재일 터다. 우주의 나이는 약 138억 년. 여기에 견주면 우리네 삶은 찰나보다도 짧다. 우주의 눈으로 볼 때 우리 눈앞의 고민은 아무 일도 아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말도 비슷한 위안을 준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아무리 견디기 힘든 일도 결국은 다 지나가게 되어 있으니 불안해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의 눈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삶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경쟁 또한 날로 치열해지는 요즘이다. 일상은 언제나 근심과 한숨거리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가슴이 먹먹하고 앞날이 막막할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며 ‘인생의 작전타임’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옛 임금들의 바쁜 하루에는 ‘강제 작전타임’이 있었다. 성현의 말씀과 역사를 공부하는 경연(經筵)은 왕의 의무였다. 이는 군주가 역사의 관점에서, 현자의 눈으로 마음을 조율(tuning)하게끔 했다. “역사의 눈으로 보면 지금의 결정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지혜로운 자들은 나의 고민에 뭐라고 충고할까?” 등을 곱씹을 때, 조급함은 스러지며 크고 넓은 생각이 열린다. 우리도 왕들처럼 때때로 우주의 관점에서, 역사의 눈으로 우리 삶을 찬찬히 짚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우주의 눈으로 바라본다고 해서 우리 삶이 귀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생활의 긴장을 놓아버려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삶은 짧을수록 더 소중하다. 하루살이에게 한나절은 인간의 하루보다 훨씬 절절하다. 작전타임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찾아드는 ‘지금, 이 순간’들을 소홀히 보내지 않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시야를 넓히면 어느덧 마음에는 의연하게 현실을 헤쳐갈 여유가 샘솟을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최근 열린 한 국제 육상경기에서 선두에 한참 뒤진 채 꼴찌로 달리던 선수가 갑자기 쏟아진 폭우를 뚫고 끝까지 완주해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19일 국제올림픽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9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2023 동남아시안게임 여자 5천m 경기에 출전한 캄보디아 대표 보우 삼낭(20) 선수는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기록은 1위에 6분 가까이 뒤진 22분 54초였습니다.

대부분 선수가 이미 결승선을 통과한 상태에서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달렸습니다.

평소 빈혈에 시달려 온 이 선수는 경기 당일에도 코치가 출전을 만류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악천후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역주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알려지면서 하루아침에 유명 스타가 됐습니다.

그는 "물론 경기를 포기할 권리가 있었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의무가 더 중요했고 포기하지 않으면 목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끝까지 달렸다"고 말했습니다.

<제작 : 공병설·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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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should humans wish for?

 

 

 

 

오늘은 성산대교앞에서 여름의 첫날이라 생각해본다.

 

jardins sagrada familia&nbsp; &nbsp;&nbsp;사그라다 파밀리아, 바르셀로나, 스페인,

 

 

 

 

예를 들어, 로저 페더러의 코치였던 폴 아나콘은 테니스 선수에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첫째는 ‘신체적 능력(physical)’이다. 

둘째는 ‘마음(하트)’으로, 한 점 한 점 목숨을 걸고 시합에 임할 수 있는가를 본다. 

마지막은 ‘머리(brain)’로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경기를 진행하는 능력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자신뿐이며, 이 셋이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처참히 무너진다고 경고한다.

비단 테니스 선수뿐이랴. 이 다큐멘터리의 메시지가 마음에 든다면 읽어야 할 책이 있다. 

‘스토아적 삶의 권유’(레드스톤)는 흥미로운 요소들로 조합된 책이다. 

 

 저자인 마르코스 바스케스는 헬스 트레이너이다.

놀라운 점은 그가 스토아 철학을 연구하여 운동 프로그램에 접목함으로써 뛰어난 성과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스토아 사상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만사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 두 가지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인식과 행동뿐이며, 통제할 수 없는 것은 그 외 전부다.

따라서 우리는 통제할 수 있는 것, 즉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여 노력하되, 통제 밖의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과 불안 대신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스토아 학파의 대표적 인물은 ‘명상록’을 쓴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그는 일생에 걸쳐 전쟁을 이끈 리더였지만 “가장 중요한 전투는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벌이는 전투”라고 적었다. 

격렬한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고요한 마음만큼 안전한 요새는 없으며, 삶의 질은 생각의 질에 달려있다고도 했다. 


나이 든 어르신 중에 혈압을 정상 기준으로 떨어뜨리고 나서 어지럽다고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뇌혈류를 유지하는 수준보다 혈압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정상 혈압은 수축기가 120(mmHg) 이내고, 이완기는 80 이하다. 

고령자도 혈압을 그 기준에 맞춰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혈압을 정상 수준으로 낮추면, 심장마비, 뇌졸중, 심부전과 같은 심혈관계 질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게다가 치매도 줄인다. 하지만 고령자는 일어설 때 혈압이 떨어지는 기립성 저혈압에 취약하다. 

혈압을 정상으로 낮추면, 저혈압 증세로 어지럼증이나 낙상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허약하고 골다공증이 있는 노인은 ‘낮은’ 혈압이 위험하다. 일부 연구는 노인 혈압을 너무 공격적으로 낮추면, 신장으로 가는 혈류를 떨어뜨려 급성 신장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뇌혈류 감소로 인지 기능 장애가 온다고도 말한다. 

이런 논쟁은 혈당, 콜레스테롤도 마찬가지다.

기실 정상이라고 정해 놓은 기준이 과연 고령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데 회의가 든다. 

기준을 정하는 연구나 임상 시험에 65세 이상 고령자는 상대적으로 적게 참여한다.

 안전성을 이유로 노인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혈압, 콜레스테롤, 혈당 등의 정상 기준이 과하게 말하면 40~50대의 질병 예방 참고치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많은 고령자가 건강검진이나 외래 검사에서 건강 지표가 정상 기준치에 들어와 있느냐를 놓고 일희일비한다. 

그런 기준을 무시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인류는 요즘처럼 나이 많아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오래 살 줄 예상 못 했다. 

이제야 의료 학회와 단체들이 질병 연구에 고령자를 더 많이 포함하거나, 기준을 따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보다 먼저 늙어본 일본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와다 히데키는 고령자 적정 의료를 설파하는 유명 정신과 의사다. 책을 내는 족족 베스트셀러다. 우리나라에도 몇 권이 번역 출판됐다. 

최근 펴낸 ‘70대에 행복한 고령자’(지상사 출간)에서는 고령자에게 건강검진 수치에 갇혀 지내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는 과감하게 더하기 의료를 하라고 권한다. 중년에 하는 다이어트나 혈압 낮추기 같은 빼기 의료를 고령자가 따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암에 덜 걸린다고 주장한다. 

콜레스테롤치가 떨어지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우울병에 걸릴 위험이 커지고, 남성 호르몬 생성은 줄어서 의욕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콜레스테롤 정상 기준에 맞추려다 힘없는 노쇠 노인이 된다고 일갈한다.

하기야 몸무게도 그렇다. 

사망 위험이 가장 낮은 구간은 체질량지수 23~24(건강한 비흡연자)이다. 

비만 분류 기준에 따르면 과체중에 해당한다. 사망 위험이 높아질 나이가 되어가면, 과체중이 사망 위험 가장 낮은 정상 기준이 되는 셈이다.

와다 히데키의 말이 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고,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해야 하지만, 그의 책이 고령자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이 들면 더하고 채우는 의료를 하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이 있다. 

건강 관리 목적은 건강 지표 정상 수치에 맞추려는 게 아니라, 실제로 건강한 몸과 뇌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일괄된 기준으로 고령자는 자칫 과잉 치료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암을 찾아내는 건강검진을 75세 넘어가면 권장하지 않는 추세다. 

국가는 75세 이상 고령자 건강 검진을 지원하지 않는다. 

대신 노쇠 측정이나, 인지 기능, 구강 기능 검진 활동을 장려한다. 

그 나이에는 숨어 있는 질병을 찾아내지 못하여 조기 사망할 확률보다, 신체 기능을 못 해서 삶이 피폐해질 우려가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초고령 사회에서는 질병 의술보다 기능 의학이 대세다.

소아가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듯, 노인은 성인의 연장이 아니다. 

나이 들면 신체 모든 면이 경직되고, 건조하다. 

인대 탄력은 줄어서, 가만히 있어도 뻐근하다. 췌장 호르몬과 인슐린 생산 용량은 석유 매장량과 같아서 말년에는 고갈된다.

 젊은 시절, 탄수화물 과다 섭취는 비만 원인이지만, 고령자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공급 없이 근력 회복이 어렵다. 

노년기 절제와 줄임은 노화를 촉진할 수 있다. 

곧 맞이할 초고령 사회, 채우고 더하는 의료,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지 싶다.

 

데이비드 이글먼이 쓴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에는 뇌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인간의 뇌는 매 순간 변화하며, 죽는 날까지 그 구성을 바꿔나간다. 

입력되는 정보에 맞춰 스스로를 최적화하고 신경회로를 재편하는 모습을 보며, 이글먼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열대우림의 복잡한 숲을 떠올린다.

책에서 본 뇌의 숲에서 860억개 뉴런들은 가지를 뻗은 나무처럼 촉수를 뻗으며 자라났다. 

낯선 환경에 노출될수록 다른 뉴런들과 계속 접속해서, 자신이 구축한 세상의 예측 모델을 재조정했다. 

그 연결점이 무려 200조개에 이르며, 그 역동성은 ‘물려받은 DNA’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마디로 나는 그저 ‘유전자 운반체’가 아니다. 

어떤 정보, 어떤 언어, 어떤 사람, 어떤 경험에 노출되는가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한다.

도로와 선로를 놓으며 끝없이 발전하는 도시처럼, 뇌의 언어에는 종점이 없다.

20230108    강원도 오대산에서


“낙관론자(optimist)는 새해가 오는 걸 보려고 자정까지 잠을 자지 않고(stay up until midnight), 비관론자(pessimist)는 지난해가 가는 걸 확인하려고 잠을 자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새해 결심은 S.M.A.R.T하게 하라고 한다.

Specific(구체적)이고, Measurable(측정 가능)하며, Achievable(성취 가능)하고, Realistic(현실적)이면서 Time-based(시간 단위)로 된 목표를 세우라는 얘기다.


“새해 결심을 믿지 마라. 뭔가를 바꾸려면 오늘 당장 바꿔야 한다.” “나쁜 소식은 시간이 날아간다는 것이고, 좋은 소식은 당신이 조종사라는 것이다.” “현재 형편(present circumstances)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출발하는지만 정하는(merely determine where you start) 것이다.”

 “행복한 삶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은 미래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 인생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다가오는 미래에 흥을 내도(get excited) 괜찮다. 과거는 당신이 그러든 말든 언짢아하지 않는다.” “큰 길로 가라(take the high road). 잘못된 길로 접어들(go wrong) 일 없다. 게다가 덜 붐빈다(be less crowded).” “똑같은 해를 100년간 되풀이해놓고 그게 인생이라고(call it a life) 말하지 마라.”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 것처럼 춤을 춰라. 어떤 상처도 입지 않을 것처럼 사랑해라. 누구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노래하라. 지상의 천국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라(live like it’s heaven on earth).” “돈을 많이 쓸 것이 아니라 시간을 많이 써라(spend more time).”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live forever) 것처럼 배워라.”

“애벌레(caterpillar)는 자신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 나비가 된다.” “우리 앞에는 뒤에 두고 온(leave behind) 것보다 훨씬 나은 것들(far better things)이 기다리고 있다.”

 “세상이 당신을 내려다보게 하지 않으려면 당신이 산에 올라가(climb the mountain) 세상을 내려다봐야(look down the world) 한다.”

 “success(성공)가 work(노력)보다 먼저 나오는 곳은 영어 사전밖에 없다.” 

“‘인생은 짧다(Life is short)’라는 말의 참뜻은 ‘그러니까 하루빨리 무언가를 하라(do something as soon as possible)’는 것이다.”

2023년 난지공원 일출

빛이 환하면 그림자가 짙다. 

입에 쓴 약이 효과가 큰 것처럼 말이다. 

마감이나 발표 날짜가 여유로우면 더 좋은 결과를 낼까. 그렇지 않다. 

시간, 인원, 날씨, 비용 같은 제약이 오히려 창의성을 촉발할 때도 많다.

조커 없는 배트맨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건 우리를 더 강하게 한다는 니체의 말을 세심히 헤아려야 한다.

사계절 내내 피어 있는 꽃은 없다.

꽃길만 걷자는 말은 판타지다.

삶에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만 이어지면 땅은 사막이 된다.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Cui bono?)’라는 질문은 범죄의 동기를 찾아내기 위해 기원전부터 한 질문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범죄로 얻는 이익이 있다. 따라서 이익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범인이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법정에서도 범죄 동기가 없다면 범죄 성립이 어렵다.

중국 고대 사상가인 한비자는 범죄자뿐 아니라 모든 인간을 기본적으로 이(利) 지향적 동물로 파악했다. 

그는 “수레를 만드는 여인(輿人)은 모두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짜는 장인(匠人)은 사람이 일찍 죽기만을 기다린다.

 이는 정녕 여인이 장인보다 선해서가 아니라, 이득이 있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결국 인간 통치에는 애정이나 의리 따위보다 냉혹한 이해관계가 더 효과적이라는 통치 철학을 말하고 있다.

한비자가 아니라도 인간이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그리 새로운 통찰은 아니다. 

범죄자의 동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이다 보니 오히려 손해 보고 사는 사람들이 이상할 지경이다. 

누군들 처음부터 범죄를 저지르고 싶어 범죄자가 되었겠는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무엇-그것이 돈이든, 지위든-을 부나방처럼 좇다 보니 어느새 범죄자 꼬리를 달게 되었을 것이다. 

공자가 일찍이 ‘이(利)’를 보면 ‘의(義)’를 생각하라고 한 것도 범죄를 면하라는 비방(祕方)일지 모른다.

남이 얻은 부당한 이익에는 분노하면서 정작 자신이 입은 부당한 손해에는 의외로 무신경한 사람이 많다. 

무신경하니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눈을 부릅뜨고 보라. 

멀쩡히 있는 나와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일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그게 시민 의식이다.



유품을 정리하다 보면 사람들은 대개 제일 좋은 것은 써보지도 못한 채 죽는다고 한다. 어른들이 늘 “아끼다 똥 된다”고 했던 이유다.
서양에도 ‘다 쓰고 죽어라(Die broke)’라는 말이 있다.

탈무드는 “좋은 항아리를 가지고 있다면 오늘 사용하라. 내일이면 깨져버릴지도 모른다”라고 가르친다.
과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now)이고,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여기(here)다.
두 가지를 합치면 ‘nowhere’가 된다. 쉽게 말해 “있을 때 잘해”라는 거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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