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의 미국 퓨리서치센터 설문조사. 미국⋅영국⋅독일⋅일본⋅프랑스⋅스페인 등 전 세계 17국 1만7000명을 대상으로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를 물었는데, 건강이나 가족을 꼽은 다른 나라와 달리 대한민국은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1위로 선택했다는 뉴스 말이다. 돈을 최고로 여기는 국가라는 꼬리표가 민망했던지 자존심을 지키려는 반박들이 있었지만, 곧 흐지부지됐다. 유감스럽게도 이 유쾌하지 않은 가치관을 뒷받침하는 다른 조사와 통계가 잇따랐으니까.

전 세계 사회과학자들이 40년 넘게 계속하고 있는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가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인간은 경제력이 커질수록 생존 그 자체보다 자기표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쪽으로 가치관이 변화하는데, 한국만은 예외였다. 1인당 국민소득 1800달러 시절이던 1981년이나 3만달러를 훌쩍 넘은 지금이나, 여전히 ‘생존’을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이 자료를 활용하여 전 세계 52국의 관용성 수준을 평가해 봤다. 나와 다르거나 나보다 못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자녀에게 가르치겠다는 응답이 한국은 꼴찌였다. 한국의 관용성(45.3%)이 경제력 꼴찌 국가였던 르완다(56.4%)보다 낮았던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통계도 있다. 2021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결산에서 경제·경영 분야가 처음으로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문학, 어린이·청소년책, 인문서도 모두 제쳤다. 1980년 교보문고 창업 이래 최초였다.

대한민국은 지금 욕망의 총량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FOMO(Fear Of Missing Out)의 공포. 부동산, 주식, 코인으로 다들 돈을 버는데, 자산 상승에서 나만 소외된 게 아닐까. 행복을 위해서 돈이 중요하다는 현실을 부인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균형이다.

스스로를 위해 종종 침대맡에서 들춰보는 시가 있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제프 딕슨 등 ‘우리 시대의 역설’ 중에서)

영끌로 갭투자하는 법은 자랑하지만 어떻게 가치 있게 살 것인지는 잊었고, 100세 시대라지만 삶의 의미를 찾는 법은 당황하기 일쑤다. 일론 머스크 덕분에 민간인들도 우주를 다녀오는 세상이지만, 정작 아파트 아래층에 누가 사는지는 모른다. 이익은 더 많이 추구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대답할 때 머뭇거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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