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시안적 유용성에만 집착하다 보면, 목전에 둔 시험 공부밖에는 인정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당장은 쓸모가 없어 보여도 결국에는 큰 쓸모로 이어질 공부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게 될 것이다. 

근시안적 생존에만 집착하다 보면, 먹고사는 일이 삶의 전부라고 착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험 공부와 큰 공부가 다르듯이, 생존과 삶은 다르다. 

삶에는 생존을 넘어서는 여유가 필요하다.

태어나서 늙어 죽을 때까지 목전의 실용성에만 연연한 대가는 협소한 사회 속에서 졸렬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관처럼 좁은 방을 벗어나 멀리까지 항해하는 커다란 배를 타고 싶거든, 먼 미래까지 감당할 수 있는 인재를 만나고 싶거든, 좀 더 깊고 큰 실용성을 맛보고 싶거든, 진정한 실용성이 무엇인지를 새삼 묻고, 재정의하는 일처럼 일견 무용해 보이는 일에 몰두해 보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남은 실용성인들 사람에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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