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1, 2>
김형경 지음, 민예당, 1994
“다시 태어나면 뭐 하고 싶어?” “미쳤냐, 또 태어나게!” 버스 안 두 사람의 대화. 다들 살기 힘든가 보다. 그래도 이런 가정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말로는 “한번뿐인 인생”이라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는 게 고달파도 계절 가는 것이 서운한 사람들에게 죽음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살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자살은 우울증과 대뇌 장애(brain disorder)라는 신체적 고통 때문이지만 모든 자살이 그렇지는 않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에 그런 죽음이 나온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7년 만에 다시 만난다. 가장 치열하게 노동현장에서 활동했던 최민화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느 자살자와 달리 단정한 필체의 긴 유서를 남긴다. “…나에 관한 이야기, 나의 현재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니 무척 어색하구나… 내 선택을 패배나 절망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단순한 충동도 아니야. 그저 내 삶이 여기까지라는 거야. 여기까지.”(1권, 88~89쪽)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은 김형경의 첫번째 장편소설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억원의 고료로 유명했던 제1회(1993년) 국민일보 문학상 수상작이다. “1980년대의 고뇌와 좌절을 절제력과 탄력 있는 신선한 문체, 집요한 자의식적 글쓰기로 성취했다”는 절찬을 받았다.
이 소설을 읽은 지 20년이 되었다. 그간 나는 한번도
“내 삶이 여기까지라는 거야. 여기까지” 이 구절을 잊은 적이 없다.
10년은 인상적인 여운으로 남았고, 나름 인생의 쓴맛을 들이켠 이후로는 작가(당시 33살)가 죽음과 자살에 대해서 잘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서 자살의 이유는 “패배, 절망”, ‘제정신이 아님’이 아니다. 어느 정도 자기 충족적 만족감과 이성적 판단에서의 “여기까지”라는 인식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삶이 완결되었다는 것이다.
게임 이즈 오버.
끝났다는 의미의 오버는 의미심장하다. 오버는 넘치는 상태. 할 일도, 해야 할 일도 없는데 계속 살아야 하는 것. 단지 죽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시간. 넘치는 술잔에서 계속 버려지는 맥주와 비슷하다. 이건 모두 엑스트라의 시간, 왜 하는지 모르는 연장전이다.
죽음뿐 아니라 일이나 재능, 관계에서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때가 있다. 슬프지 않다. 최선을 다했고 행복했고 이룰 만큼 이루었고, 잃을 만큼 잃었고 아무것도 추구할 것이 없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끝난 시점. 살기 싫은 것이 아니다. 삶이 좋은 의미에서 소진(消+盡)된 것이다. 아프거나 미치지 않은 상태에서 “여기까지”라고 판단할 수 있다.
만일 80대 후반의 말기 암 환자가 반복적인 수술 끝에 자살했다면 비난하는 사람, 드물 것이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상당할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다. 자살에 대한 낙인은 젊음에 대한 욕망,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하나의 극(劇)이 끝났다. 사는 기간을 국가, 신, 절대자만이 판단해야 하는가? 이 소설의 죽음은 자연스러웠다. 설득력 있다.
의학적으로 자살의 원인은 미래가 불행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교정되어야 할 인지 장애다. 삶과 죽음의 유일한 차이는 행이든 불행이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가능성이다. 그래서 나는 이 구절도 매우 좋아한다. “골목이 꺾이는 곳마다 그대 만나리.”(237쪽) 죽음의 반대는 호기심,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알 수 없다는 불안과 설렘이지 당위로서의 생명이 아니다.
“여기까지”라는 개인의 판단을 존중하자? 개인의 자유 이슈가 아니다. 이것은 공동체의 문제다. 생각해본다. 나는 타인의 삶에 호기심을 주는 사람인가. 인간에 대한 혐오로 죽고 싶은 마음을 부채질하는 사람인가. 우리 사회는 구성원들이 어쨌든 살아보자는 의욕을 일으키는 매력적인 곳인가. 고통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가능성뿐이다. 생사의 갈등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에게 제시되어야 할 것은 미지라는 기대가 있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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