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의 <슬픔>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주인공은 마부 이오나이다. 이오나는 얼마 전 아들을 잃었다.
그러나 그에게 그 사건 자체가 어떤 긴장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다. 그는 사흘 동안 병원에 누워 있다 간 아들의 죽음을 ‘주님의 뜻’으로 돌린다.
물론 이것은 신앙고백적 차원이라기보다, 아들의 허무한 죽음에 대한 아픔의 표현일 것이다.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허무하게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부 이오나는 아들의 죽음에 대하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 혼자서 죽은 아들을 생각하는 일은 끔찍한 일이지만, 누군가와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은 그나마 위로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마차를 탄 손님들과 자신의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한 인터넷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내가 믿었던 신앙이 나를 배신했다.” 세월호 사건으로 외동딸을 잃은 한 어머니의 슬픔에 관한 기사이다.
기사를 보면, 그의 슬픔은 세월호 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슬픈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려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오나의 상황과 같다. 세월호 사건으로 외동딸을 잃은 그 어머니에게서 새롭게 생겨난 긴장은 이렇게 표출되고 있었다.
“말로는 아픔을 같이한다고 했다. 공감한다고 했다. 이해한다고 했다. 그런데 말뿐이었다.
행동이 없었다.
기도로만 아픔을 풀어 가고, 기도로 아픔을 치유해야 한다고 했다.
교회는 나와 유가족을 상처가 있는 사람, 위로가 필요한 사람으로 대했다. 자신들의 틀 안에 우리를 가두어 놓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 같았다.
필요할 때만 형제자매이고, 정작 내가 어렵고 힘든 때가 되니 등을 돌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관심이었다.”
체호프가 소설 <슬픔>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미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견디는 인간의 모습’이다.
일어난 사건의 피해자는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어찌하지 못한다.
그것이 가장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다만 피해자는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슬픔을 말하고 싶어한다.
혼자 생각하면 끔찍하니까 누군가와 함께 그 슬픔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그것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회복’의 메커니즘이다.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정부도 국회도 교회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미 일어난 사건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에, 유가족들에게도 ‘체념’이라는 상태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부나 국회를 보면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닌 사건 자체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새로운 긴장이 생겨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슬픔을 나누는 일이다.
체호프가 주목했듯,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교회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미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견디는 유가족들의 모습이어야 한다.
슬픔을 나누고 싶어하는 유가족들에게 ‘그만 말하라’고 하는 사람이 가장 나쁜 사람이다.
<슬픔>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들이 죽은 지 벌써 일주일이 되어가는데, 그는 아직 그 누구와도 제대로 말을 해보지 못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바로 이런 마음일 것이다.
그들은 아직 그 누구와도 제대로 말을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만 말하라니? 이오나는 혼잣말로 이렇게 속삭인다. “혼자 있을 때는 아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에는 아들 생각을 할 수 있지만, 혼자서 생각하거나 아들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견딜 수 없이 두렵다…”
왜 대통령은 국회 연설 하러 가면서, 자신들의 슬픔을 들어달라는 유가족들의 절규를 그냥 지나치는가?
왜 교회는 그들과 제대로 말 한번 나눠보지도 않고, 서둘러 귀를 닫는가? 그들의 아픔은 아직 충분히 말해지지 않았다.
장준식 재미 거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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