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이 성탄절 카드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안 쓴 지 40년에 가깝다. 대신 '해피 홀리데이스'라고 쓴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미국인들을 배려해서라고 한다. 인권을 내세운 카터 대통령이 시작해 보수 간판의 레이건, 부시 대통령도 이어받았다.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공휴일이지만 백인들이 전통적으로 기려온 최고 축제의 의미는 과거와 같지 않게 됐다.

 

성조기가 없는 미국 학교도 많다. 소수자인 외국인 학생에게 국기를 내세우는 걸 차별이라고 보았다. 관청에선 '불법 입국자' 용어가 없어졌다. 대신 '입국 증명서가 없는 노동자(undocumented worker)'라는 복잡한 말이 생겼다. 배려가 지나쳐 애국과 법치를 외면하는 수준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히스패닉과 동양계, 흑인을 싸잡아 '유색 인종'이라고 하니 백인을 '무색 인종(person of non-color)'이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남자를 뜻하는 'man'이 성평등주의자에게 공격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을 총칭할 때 이 말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공식적으로 폴리스맨은 '폴리스 오피서(officer)', 세일즈맨은 '세일즈 퍼슨', 체어맨은 '체어' 또는 '체어 퍼슨'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뉴욕시는 동성 연인의 권리를 배려한다며 결혼신고서를 '가정 내 파트너 신고서'로 바꿔 불렀다. 동물 평등론까지 가세했다. 애완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 하니 동물 주인을 '반려인간'으로 부르자고 했다.

 

이런 풍조를 'PC(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이라고 한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뜻이다. 다문화주의에 근거해 차별적 언어나 활동을 바로잡자는 운동이다.

하지만 미국은 기독교 윤리와 가족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PC가 시작됐을 때부터 '반(反)PC 운동'도 시작됐다. 인종 평등, 종교 평등, 성 평등 운동을 백인의 정체성, 기독교 가치, 전통적 가족주의의 해체 신호로 받아들인 것이다.

 

'앵그리 화이트(분노한 백인)'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핵심 지지층이라고 한다. 일자리를 위협받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여기에 상당수 백인 부유층까지 가세했다. 문화적 분노랄까. 미국 지식인들은 '미국이 부끄럽다'고 개탄하지만 성탄절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고, 성조기를 향해 국가를 부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트럼프는 이들의 분노를 표로 연결했다. 배려와 관용이 사라지면 공존의 끈도 약해진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근심스러운 눈으로 보는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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