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만들어진 우울증>은 자연스런 감정을 질병으로 만드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수줍음 같은 소극적 기질을 우울증으로 몰아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미국의 제약, 의료 산업 구조를 파헤친다. 하지만 우울증에 관한 무지가 심각한 우리 사회에서는 섬세한 읽기가 필요하다. 우울증은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아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들은 다른 약은 남용하면서 유독 신경정신과 처방전만은 “의지로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지는 적재적소의 미덕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 의지는 재앙이다. 지나친 의지, “하면 된다. 안 되면 될 때까지”는 목표가 무엇이든 바람직하지 않다. ‘열심’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많아서일까. 내게 ‘열심’은 치열하거나 성실하다는 의미보다 완장 차고 설친다는 인상이 강하다. 환경 파괴는 덤이다.
이 책은 수줍음이 어떻게 병이 되었나(원제)를 추적한다. ‘밝고 긍정적인 인상’처럼 무조건 긍정되는 말도 드물다.
자본주의에 적합한 인간형과 기분(mood)이 있다. 체제는 적응형 인간을 정상으로 본다. 활기는 맹목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된 반면 우울함, 슬픔, 무기력은 부적응 ‘증상’이 되었다. 단조형 감정은 자본의 적이다. 자본은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없다. 글자 그대로 경기는 ‘부양(浮揚)’하는 것이다.
부끄러움, 겸손함, 신중함의 미덕은 후퇴했다. 이 책은 성공을 위해 확신에 차 있으며 사교성이 지나치게 좋은 인간 유형을 찬양하는 시대를 분석한다. 수줍음이 아니라 다행증(多幸症)이 문제라는 것이다. 울퉁불퉁한 사람, 내향적인 사람, 염세주의자, 비관주의자, 소심한 사람이 없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일까.(7장)
즐거움 집착 현상은 사색이나 고뇌보다 건강, 출세, 스펙, 힐링에 집중한다. 그렇지 않거나 그런 가치에 관심 없는 사람은 낙오자 취급한다. 뻔뻔 당당형, 자기도취, 근거 없는 자신감에 넘치는 리더들이 많다. 막히는 도로에서, 아니 사회 도처에서 “목소리 크면 이긴다”는 ‘활기’가 넘친다.
세월호는 매일 충격의 강도를 갱신하고 있지만 ‘세월호 피로감’은 절정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문제 해결을 방치하고 일을 안 하는 정치권과 관료들이 국민에게 피로감을 준다는 뜻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이 표현으로 비판받아야 할 사람들이, 이 말로 피해 집단이 행복을 방해한다고 불평하고 있다. 당신들 때문에 피곤하다고.
피로감의 출처는 어디인가. 지난 4월16일 이후 사태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누가 할 말을 누가 하고 있는가’라는 피로감이다. 적반하장이 분노에서 가치관의 혼란과 자기 검열을 거쳐, 집단 우울증을 낳았다. 그들이 말하는 피로의 내용을 알고 싶다. 지겨움? 지겨운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무엇이 이토록 정부 여당을 공포에 떨게 하는가 궁금증만 깊어갈 뿐이다. 유병언씨의 죽음(?)을 둘러싼 항간의 다양한 분석들이 대표적인 예다.
피로감 언설은 어두운 일은 잊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처럼 얘기한다.
신문이나 방송도 “따뜻한 소식, 즐거운 뉴스가 많은 세상을 희망해봅니다”는 식의 언급을 자주 하는데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소식은 없다. 뉴스는 정치보다 당파적이다. 사람마다 이해관계, 입장, 위치에 따라 희비가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 괴로운 사실이 어떤 사람에게는 사태의 진전일 수 있다.
어떤 이에겐 평화가 어떤 이에겐 부정의일 수 있다.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건의 효과는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무엇에 대해 걱정하는가”보다 “이 걱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효과적이다.(257쪽)
나는 한국 사회가 싫어하는 인간형은 진보나 여성주의 이런 쪽(?)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문제 제기, 정확한 질문이 많은 사람도 공격적이라고 기피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모나거나 어두운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사유는 인간 본성(호모 사피엔스!), 세월호는 영원히 생각할 문제다.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일상이다. 행복 강박을 버리고 비극을 허락하라.
불안 없는 영혼이 더 위험하다.(319쪽)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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