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으로 백악관 기자실에 처음 갔을 때의 느낌은 ‘이너 서클’에 들어온 이방인 같았던 게 사실이다. 49석 좌석이 간격도 없이 촘촘한데, 다들 ‘여긴 내 자리’라며 밀어내는 통에 그제야 모든 좌석이 지정석이란 걸 알았다. 맨 뒷자리 좁은 틈새에 서 있는데, 일본·중국 기자, 미국 지방지 기자 몇 명이 함께했다. 대변인은 ‘입석’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에이피>(AP), <뉴욕 타임스> 등 앞자리 유력지 기자들만 ‘이름’(first name) 불러가며 몇 번이고 질문권을 줬다. 하지만 질문은 물렁하지 않았고, 답변이 부실하면 똑같은 질문이 몇 번이고 반복됐다.

 

가끔 국내 기자회견에서 “오늘 주제에 대해서만 질문해 주세요”라는 부탁을 한다. 황당하다. 그러려면 보도자료만 돌릴 것이지. 1998년 11월 빌 클린턴과 김대중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엔엔>(CNN) 기자는 클린턴에게 “르윈스키 스캔들”을 질문했다. 일반적이다. 외국에서 다른 나라 정상 또는 장관과의 회담 뒤 열리는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그들의 관심’을 물어주는 경우는 없다. 제3국 정상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회견장에 멀뚱하게 서 있는 건 보통이다. 기자들이란 절대 친절하지 않고, 눈곱만큼의 배려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얼마 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28 합의를 집요하게 캐묻는 기자에게 화난 얼굴로 “그 질문엔 더 이상 답하지 않겠다”고 정색할 때 의아했다. 유엔 사무총장 출신이 어찌 저런 반응을. 10년간의 시차와 전혀 글로벌스럽지 않은 언행 등 이도 저도 아닌 모순과 모순이 중첩된 모양새였는데, 나로선 그 반응이 제일 이상했다.

 

2008년 미 대선을 앞두고 론 네슨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이 대선주자들에게 ‘언론 소통 10계명’을 제시한 바 있는데,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절대 거짓말 말고, 숨기지 말라 △인터넷에 주목하라 △시각효과를 활용하라 △기자에게 잘 알려주라 △‘오프 더 레코드’는 없다 △질문을 잘 들으라 △‘노 코멘트’란 말은 절대 말라 △언론전략을 사전에 준비하라 △방어적 대신 공세적 태도를 먼저 취하라 △나쁜 뉴스는 내가 먼저 말하라 등이다.

 

새 대통령은 더 이상 ‘어, 그, 저’란 말 하지 않는, 기자회견 두려워하되, 듣기 좋은 질문만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기사를 다 좋아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아첨꾼은 기자의 역할이 아니다. 제게 어려운 질문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 기자회견은 1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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