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과 아웃라이어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심리학자 K 안데르스 에릭손은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장래에 세계 수준의 연주자가 될 수 있는 엘리트, 그저 평범하게 잘하는 모범생, 마지막으로 공립학교 음악교사 정도를 노리는 열등생. 에릭손에 따르면 이 세 그룹에는 타고난 재능의 차이가 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단 하나, 연습 시간뿐이었다.
경영저술가 맬컴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스무 살이 되면 엘리트 학생은 모두 1만 시간을 연습하게 된다. 반면 그냥 잘하는 학생은 모두 8000시간, 미래의 음악교사는 4000시간을 연습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1만 시간의 법칙’이다. 톱클래스의 경쟁을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뜻이다. 제아무리 타고난 천재여도 그 정도 노력하지 않으면 빛을 발하지 못한다. 손웅정의 지도하에 엄청나게 연습한 손흥민뿐만이 아니다. 모차르트 역시 아버지의 조기 교육을 받았는데, 그런 그도 1만 시간 이상의 수련을 쌓기 전까지는 그럴듯한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천재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적어도 하루에 세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을 보낸, 1만 시간의 연습벌레들이다.
1만 시간을 연습에 매진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과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글래드웰에 따르면, “성인이 아닌 경우, 스스로의 힘만으로 그 정도의 연습을 해낼 수는 없다. 격려해주고 지원해주는 부모가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곤궁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연습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없으면 안 되므로 가난해서도 곤란하다. 대개의 경우, 특수 프로그램이나 특별한 종류의 기회를 붙잡아야 그 수치에 도달할 정도로 연습할 수 있다.”
의족으로 매일 42.195㎞ 뛴 의지의 여성 암으로 다리 잃은 헌트-브로에스마 104일간 매일 마라톤 풀코스 뛰어
암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40대 여성이 의족을 달고 104일간 매일 마라톤 풀코스(42.195km)를 완주했다. 각종 세계 기록을 공인하는 월드 기네스 레코드(기네스북)의 검토를 거쳐 기록을 인정받으면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매일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으로 기록된다.
주인공은 미국 애리조나주에 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아마추어 마라토너 재키 헌트-브로에스마(46). 1일(현지 시각) AP뉴스에 따르면 그는 지난 1월 17일부터 집 근처 마라톤 코스나 실내 러닝머신으로 104일간 매일 42.195km를 달렸다. 25세 때 희소암의 하나인 유잉 육종에 걸려 왼쪽 무릎 밑 다리를 절단해 의족을 달고 이뤄낸 결과다.
헌트-브로에스마는 6년 전 남편과 함께 처음 마라톤을 시작했다. 각종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5km, 10km, 하프 마라톤으로 거리를 늘려가던 그는 100일간 100번 풀코스 완주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도전을 시작했다. 당시 세계 기록은 미국의 비장애인 마라토너가 세운 95일 연속 완주 기록이었다. 그러나 도전을 이어가던 중 영국의 또 다른 비장애인 마라토너가 101일 연속 풀코스 완주를 하며 세계 기록을 비공인 경신했고, 헌트-브로에스마는 목표를 늘려 결국 104일 연속 완주에 성공했다.
거의 칠순이 임박한 루이 암스트롱이 이후로 오랫동안 회자될 노래 하나를 녹음하고 있었다. 이 노래는 꼭 20년 뒤 1987년 개봉된 영화 ‘굿모닝 베트남’에서 고요한 시골 마을을 네이팜탄으로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드는 장면에서 우아하게 울려 퍼진다. 그리고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도 이란과 과테말라, 칠레와 엘살바도르, 이라크와 수단 등에 무력 개입한 미국의 역사를 요약하는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4절의 가사는 너무 단순하다. 푸른 나무와 빨간 장미를 보며(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보며(I see skies of blue and clouds of white), 일곱 색깔 아름다운 무지개(The colors of the rainbow so pretty in the sky)와 울던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며(I hear babies crying, I watch them grow) 스스로 되뇌는 말,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What a Wonderful World)? - 이것이 전부다. 아마도 이 노래를 가로지르는 소박하고 따뜻하며 무한한 낙관성이 모순과 갈등 위에 저질러지는 테러와 전쟁의 현실을 패러디하는 데 동원되는 이유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