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이 개방한 서울시청 정동 전망대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고 변신하는 덕수궁과 돌담길, 덕수궁 미술관, 석조전의 고풍스러운 모습과 성공회 대성당같은 아름다운 건축물이 들어서 있는 서울시 중구 정동.

이 일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숨겨진 명소가 정동 덕수궁 돌담길가에 있다.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3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이 큰 유리창 너머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곳에서 만나자며 연락을 해 온 지인에게 왜 쌩뚱맞게 서울시청사 건물이냐고 물었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겠다.

청사 13층에 내리면 나오는 작은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큰 창문으로 나타나는 예상치 못한 풍경에 감탄만 삼켰다. 저절로 카메라에 손이 가는 도심 속 멋진 풍경이다. 이곳은 보통 '정동 전망대'라 불리는 공간으로 원래 대회의실과 창고로 사용되던 곳이었단다. 서울시 신청사가 지어지기 전에 이 서소문 청사에서 근무를 했던 박원순 시장이 '공유도시 서울'의 일환으로 개방했단다.

회의실, 창고에서 시민들을 위한 전망 명소로


                                                ▲ 덕수궁과 정동 일대, 뒤로 산자락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정동 전망대.


창가에 앉으면 정동길 주변, 서울시 청사는 물론 뒤로 인왕산과 북악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덕수궁 전경 덕택에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명당 전망대가 되었다.

구한말 순종에게 왕위를 건넨 고종 임금이 주로 거주했던 아담한 덕수궁 전경과 궁궐내 서양식으로 지은 석조전, 고종이 세상을 떠난 함녕전 등이 땅에서 볼 때와는 다른 감흥으로 다가왔다.

덕수궁 돌담길 뿐만이 아니라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고종임금이 황태자(순종)와 1년 간 피신해 있었던 1890년 지어진 구러시아 공사관, 영국 성공회의 지원으로 1926년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한 성공회 성당, 백 년이 넘은 정동제일교회, 특이한 모양으로 인해 시민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서울시 신청사, 옛 서울시청 건물이었던 서울 도서관도 잘 보인다.

서울 도심에서 이렇게 쉽게 고궁과 빌딩 숲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니 처음가본 사람은 누구나 감탄이 절로 나올만 했다. 곧 이어질 단풍의 계절 가을이나 눈 내린 겨울엔 한 폭의 수채화나 수묵화가 펼쳐질 것 같다. 때마다 사진 동호회원들의 필수 출사지가 될만하다.


                                                 ▲ 관광객뿐만 아니라 평일 점심시간엔 인근 직장인들의 인기있는 공간이 되었다.

차 한 잔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풍경과 햇살이 함께 스며드는 창가에 여유롭게 앉아 있다보니 문득 야경도 참 멋지겠다 싶었다. 전망대 카페 직원은 나처럼 전망대에서 펼쳐지는 덕수궁과 정동의 야경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서울시에서 시청사 경비나 안전문제 등을 고려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저녁에 개방하는 것을 실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청의 허가를 받아 이곳에서 야경 촬영 작업을 한 적이 있는 외국 유명 사진가 마이클 케나씨는 "이곳에서의 야경은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보기 힘든 멋진 풍경"이라고 감탄했다니 기대가 크다.

전망대 카페의 벽에는 정동 주변을 담은 흑백의 옛 사진들이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정동 일대의 옛 사진을 보며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덕수궁, 정동제일교회, 프랑스 공사관, 이화학당, 배재학당 등의 옛날 모습이 새롭고 새삼스럽다.

정동 전망대에는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은 카페가 들어서 있다. 장애인을 고용하여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커피나 음료수 가격이 비교적 저렴해서 (2000원~3500원) 점심시간에 찾아오는 회사원들이 많다고 한다. '다락'이라는 카페 이름도 친근하다. 개인컵을 지참하면 500원이나 할인해 주는 착한 카페다. 시청사 안에 있는 카페다 보니 운영시간도 특이하다. 주중 주말, 휴일 모두 오후 6시까지이며, 전망대의 입장료는 따로 없다.



출판계 비정규직 외주노동자들의 슬픈 현실... 사회보장 장치 시급


최근 드러난 유아용 그림책 <구름빵> 작가의 매절계약으로 출판사의 불공정한 계약 관행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출판사의 불합리한 관행은 무명작가의 매절계약뿐만이 아니다. 출판계 비정규직 외주노동자(프리랜서 형태로 일을 하는 편집자, 번역가, 디자이너를 말함)는 상시적으로 저임금, 임금체불, 장시간 노동, 불합리한 업무 지시 등에 시달리고 있다.

'2013년 외주출판노동자 노동실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월 소득 5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는 4.5% 정도지만, 150만 원 미만이 45.9%로 가장 많고, 월 소득 100만 원 미만도 24.1%에 달했다. 종사자의 70%가 월 소득 150만 원 이하의 저임금 상태에 놓인 것이다. 월 25일 이상 노동한다는 비율도 26.3%에 달해 종사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주출판노동자들은 작업비 수령 지연도 수시로 겪는다. 작업물을 완성해 출판사에 넘기면 결제가 바로 이뤄지지 않고, 짧게는 1~2달 길게는 서너 달이 지연된다. 외주 편집자인 K(32)씨는 "이 과정에서 작업비를 독촉하다가 결국 받지 못해 포기하는 비율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노동의 대가를 정상적으로 받지 못하는 전근대적이고 비상식적인 관행이 출판계에 퍼져 있는 것이다.

대다수 외주출판노동자들은 주로 인맥을 통해 일감을 구한다. 일감의 수급구조가 공식적인 시스템이 아닌 이렇게 사적인 인맥을 통해 이루어지다보니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또한 출판 산업의 불황으로 인한 수익구조의 불안정성, 법제도 미비 등이 불합리한 일들을 은폐하고 유지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휴일 없이 일하지만 월평균 수입은..."

 

 



8년 동안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한 전업 번역가의 사례를 들여다봤다. 이 번역가의 사례는 편집자, 디자이너의 것이기도 하다. 지난 5일 인터뷰한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나는 남성이고, 지금 39살 미혼이다. 전업 번역가이다. 지금은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사무실을 하나 얻어 일하고 있다. 4년제 대학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외국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러다가 독립 번역가의 삶을 꿈꾸며 번역 회사에 등록을 했다. 번역 회사는 번역 의뢰인과 번역가를 연결해 주는 곳이다. 거래처가 아직 없는 초보번역가들이 주로 번역회사를 이용한다.

번역 회사에선 의뢰가 들어오면 소속 번역가에게 샘플을 보내준다. 번역 능력을 검증한다는 명분이다. 번역 회사에서 보내준 샘플을 번역해 의뢰인에게 보내주면 의뢰인이 원하는 번역가를 채택하는 것이다. 번역회사에 보내준 내 샘플이 채택되어 첫 책이 나왔다. 번역 회사에서 수수료를 많이 떼가는 통에 손에 쥔 돈은 적었지만, 어쨌든 처음에는 책에 인쇄된 내 이름을 보곤 뿌듯했다. 비로소 내가 번역가가 되었구나. 그때부터 번역가의 낭만적인 꿈은 머지않아 현실이 되리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 그 순진한 생각 이면에 감춰진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휴일도 없이 하루 장시간 일을 하지만, 지금 내 월 평균 수입은 100만 원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구조적으로 문제가 많기 때문에 몇몇 스타 번역가 외에는 대체로 형편이 이렇다. 현실성 없는 번역료 단가에 대해선 이제 말하기도 지친다. 그나마 그것을 깎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번역료를 제때 받지 못해 형편이 어려울 때도 비일비재하다.

아직도 번역료가 들어오는 날이면 잠을 편히 못 잔다.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올까,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서다. 월세 단칸방을 작업실 겸 주거지로 삼은 지도 약 6년이 좀 넘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에게 딱지 맞은 적도 있다. 그나마 나는 미혼이라서 이렇게라도 버티지만 기혼자들은 어떨까? 전업 번역가로 온전하게 가장 역할을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수입 얘기하는 건 솔직히 좀 창피하지만, 나는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되기를 희망한다.

나는 딱히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모든 것에 욕심이 있는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 있다. 변역가란, 내가 원하는 장르만을 선택해 번역하고도 고고하게 생계를 이어갈 만큼 품격있는 일이 아니다.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거다.

나는 그렇게 이름 있는 번역자가 아니라서 한 달에 두 권을 번역하지 않으면 생계 자체가 어려울 지경이다. 20권을 번역했다는 나도 이런데, 초보 번역가는 오죽할까.

출판사가 직접 의뢰할 때는 샘플을 따로 번역하지 않고 바로 계약한다. 작업이 끝나고 원고를 보내면 한 달 후에 번역료의 절반을 받는다. 그후 책 출간일 다음 달에 나머지 전액을 받는다. 출판사마다 계약사항이 천차만별이다. 출간 후 번역료를 다 받는 계약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책이 순로롭게 출간이 되었을 때 얘기다. 출간이 1년, 2년씩 미뤄지는 경우에는 나머지 절반의 번역료를 받기 위해서 수개월, 아니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 와중에 번역료를 일부 또는 전체 떼이는 경우도 많다. 대개 책 출간에 맞춰 결제가 이뤄지기 때문에 번역가는 계획적인 생활비 지출이 어렵다.

​내가 번역을 마친 뒤 3년 뒤에 책이 나온 적도 있다. 지금도 네다섯 권 정도가 출간이 지연된 실정이다. 그래서 번역가들 중에는 당장 생계를 위해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도 많다. 어떤 동료는 나이 마흔에 새벽 편의점 알바를 한다. 막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출판사와의 거래는 연줄이 없는 한 맺어지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번역가들이 불합리한 관행을 겪어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혹시 불이익을 당할까봐서다. 출판사의 나쁜 관행은 결제문제 뿐만이 아니다. 사소하거나 납득할 수 없는 번역의 오역을 트집 잡아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다거나, 무리하게 일정을 짧게 잡아 '몰아치기'를 지시하는 몰상식한 고용주도 많다. 출판사 측의 대리 번역이라는 '사기성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 이건 신예 작가를 죽이는 일이다. 근데 그걸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모르는 사람은 영세 사업체가 그런 불합리한 관행을 많이 행하리라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출판사들의 어이없는 행태도 적지 않다. <구름빵> 작가의 매절계약 문제? 출판계에서 그건 차라리 양반이다. 책이라는 교양을 다루는 곳에서 정작 교양이 실종된 예는 허다하다. 이게 출판계의 이면이다.

지금 내 주변에서 변역가를 직업으로 봐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냥 다시 직장 다니라는 진지한 조언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나는 좋은 책을 만드는 일에 많은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점점 나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 지쳐간다."

예술인 위한 사회복지시스템 운영하는 유럽

이런 문제점들은 출판노동자들의 다양한 네트워크 안에서 수시로 고발된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노동자로서 기본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는 외주출판노동자는 자본주의의 위기 비용을 전가 받으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거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일은 드물다"고 말했다.

유럽의 경우 예술인을 위한 사회복지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는 일반적인 근로자보다 수급자격을 낮추어 특별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독일은 국가와 저작권 사용자가 예술인의 보험료를 절반씩 부담해 이들의 생계를 보호하고 있으며, 네덜란드는 예술인 최저생활보장제도(WIK)를 통해 10년 동안 최대 4년 간 일반복지지원의 70%에 해당하는 보충소득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프리랜서 예술인을 위한 예술인복지법이 2012년에 제정된 이래 지난 8월 17일 개정안이 발효되는 등 조금씩이나마 제도가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첨병인 책을 만드는 외주출판노동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은 여전히 전무한 상태다.

노무사모임의 한 관계자는 "출판업은 산업의 특성상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문화예술과 마찬가지로 보호와 지원이 절실한 분야"라고 말했다.

 

 

 

 

 

 

 

 

 

 

 

 

쿠바에서 더 가까운 미국, 키웨스트(Key West)

미국보다 쿠바에서 가까운 마을

 


                                      ▲ 마이애미의 일출 - 마이애미의 일출은 해가 떠오름에 따라 조금씩 빛깔을 찾아가는 열대 야자수의 모습이 포인트다.


구름이 잔뜩 낀 도시를 벗어나는 것만큼 여행에서 스릴 넘치는 것도 없다. 저녁부터 심상치 않던 바람의 기운의 영향인지 마이애미의 새벽 바람은 제법 쌀쌀했다. 천천히 몰려온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덮으려는 찰나, 용케 태양이 떠올랐다. 버스는 고속도로에 오르자 속도를 더해 빠르게 도시를 벗어났다. 구름이 빠르게 스쳐 지나갈 때마다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이제 비라면 지긋지긋 했다.

첨단 문명의 세계에 발을 들인 지 겨우 이틀 만에, 나는 다시 멕시코행 비행기표를 끊고는 미국의 최남단, 키웨스트(Key West)로 가는 투어버스에 몸을 실었다. 미국 본토에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섬을 다리로 이어 그 끝에 닿은 곳 키웨스트는 미국의 최남단이지만 쿠바에서 더 가까우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흔적이 있는 곳이다.

 

 

▲ 키웨스트로 가는 길 - 총 42개의 다리, 오른쪽에는 멕시코만, 왼쪽에는 카리브해를 끼고 달리다 보면 몸이 하늘로 치솟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차가 출발한 지 1시간이 지났을 때 즈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 밖의 풍경이 바뀌질 않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어진 것인지 알 수 없는 다리는 끝도 없이 이어졌고, 다리 양쪽의 멕시코만과 카리브해는 코발트 빛으로 반짝였다.

중간 중간에 관통하는 섬에는 몇 개의 리조트에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다리 위에서는 낚시를 하는 사람이 눈에 띄기도 했다. 한 번쯤은 내려 그 아름다운 바람 냄새를 맡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 창문에 몇번씩이나 머리를 박는 세시간 내내 같은 풍경을 달리고서야 길은 끝났다.

"여러분, 여러분이 방금 달려온 길이 미국의 1번 고속도로입니다. 여기가 시작점이에요. 오른쪽을 보세요."

키웨스트의 도착과 함께 드라이버이자 가이드인 기사가 안내를 한다. 어무런 특징없이 'BEGIN 1, 0 MILE' 이라고 쓰인 표지판이었지만 그 얘기를 들으니 묘하게 반갑다. 마이애미에서부터 무려 42개의 다리를 건너서 도착한 키웨스트의 첫 느낌은 그야말로 '옛 미국' 이었다.

 

              ▲ 키웨스트의 풍경 - 선로 위를 달리는 오래된 트램, 엔틱한 나무로 된 표지판과 건물들은 키웨스트를 마치 거대한 민속촉 같이 느끼도록 만든다.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빨려들어온 것만 같은 키웨스트의 거리에는 자동차 대신 오래된 트롤리가 다닌다. 네온사인이라고는 전혀 없는 거리 곳곳에 세워진 오랜 나무 표지판은 한층 더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여행자들이 붐비는 부둣가의 광장에는 카리브해의 해적을 재현한 극장과 남국의 정취를 간직한 작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나열되어 있다. 한 마디로 키웨스트는 마을 전체가 잘 꾸며진 민속촌이다.

 

▲ 키웨스트의 명물 - 키(Key) 지역에서 나는 라임으로 만든 라임파이를 한입 베어물고 클래식 자동차를 배경으로 쿠바 출신 가수의 노래가 흐르는 펍에 앉아 맥주한잔 기울이는 것이야 말로 키웨스트를 제대로 즐기는 법이다.



중심가인 듀발스트리트를 따라 걷다 보면 재미난 가게들도 많다. 만화에서나 볼 법한 클래식한 스포츠카와 오토바이를 통째로 옮겨놓은 바와 라틴 음악이 흐르는 망고 나무로 장식된 카페에서 사람들은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맥주 한 잔에 가볍게 춤을 춘다.

관광객들이 두고 간 팁으로 온 지붕과 천장을 장식한 한 가게는 거리의 명물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제 지폐에 자기 이름과 메시지를 적어 빈 곳을 메운다. 걷다 보면 풍겨오는 상큼한 향기에 이끌린 곳에는 어김없이 갓 구워진 키 라임 파이(Key Lime Pie)가 빛나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키 라임으로 만든 파이를 한입 베어물면 입안 가득 과즙이 퍼지면서 신 맛이 침샘을 자극한다.

▲ 서던모스트 포인트 - 지리적으로 미국의 최남단을 표시하는 이곳은 쿠바에서 불과 145km 떨어진 곳으로, 실제로 헤엄을 쳐서 건너오는 쿠바인들이 있다고 한다.


계속해서 길을 걷다 바다가 보이는 절벽에 닿았다. 한쪽에는 '군사지역'이라고 쓰인 푯말이 보이고 부표를 닳은 기념비가 눈에 띈다. '최남단'(Southernmost Point) 이라고 적힌 걸로 보아 여기가 미국의 끝이다.

맑은 날에는 멀리 쿠바가 보인다는 이곳은 200마일 떨어진 미국보다 쿠바에서 가깝다. 카스트로 혁명 이후 헤엄을 쳐서 미국으로 건너오는 쿠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오는 길에 농담처럼 얘기하던 쿠바인 버스 운전사의 이야기는 사실이었던 걸까.

'노인과 바다', 이렇게 탄생했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단신으로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아내와 가족도 없는 노인의 유일한 친구는 한 어린 소년이었지만 몇 달째 고기를 잡지 못해 위기에 처한 그를 보며 소년의 부모는 불운을 가져오는 남자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자신감에 찬 노인은 여느 때처럼 바다로 나섰고 배보다 더 큰 물고기 한 마리와 실랑이를 벌인다. 해가 질 때까지 이어진 싸움은 노인의 배를 바다 한가운데로 끌고 갔고 며칠간의 혈투 끝에 노인은 거대한 물고기를 배에 묶은 채 항구로 나아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상어가 나타났다. 가지고 있는 모든 도구를 동원해 상어와 싸움을 벌였고, 거대한 물고기는 이미 뼈만 남았다. 배는 항구로 돌아왔고 지친 노인은 소년의 곁에서 잠이 든다. 그날 밤 그는 한 때 그의 꿈이었던 아프리카 사자를 만나는 꿈을 꾼다.

노벨상을 수상하며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전설로 만든 <노인과 바다>의 내용이다. 간략하게 보면 별다를 것 없는 내용이지만 그는 이 땅끝마을에서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인간 정신과 동시에 고독한 인간의 운명을 노래했다.

 

                           ▲ 헤밍웨이의 집 - 8년을 머문 이곳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킬리만자로의 눈' 그리고 '노인과 바다' 가 탄생했다.

지금은 키웨스트의 관광명소가 된 어느 골목길의 집에서 헤밍웨이는 8년간을 살았다. 잘 정돈된 정원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거의 사진과 당시 사용했던 집기들이 전시돼 있다. 벽에 붙어 있는 여러 가지 장식은 관광객을 의식한 꾸밈으로 보이지만, 그는 실제로 이곳에 머물며 글을 썼다. 훗날 <노인과 바다>라는 이름이 붙어 노벨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벽에 붙은 물고기 모양의 장식은 <노인과 바다>를 의식한 주최 측의 꾸밈으로 보이긴 하지만 시대를 풍미했던 소설가의 집은 먼 길 달려온 여행자의 마음을 한층 여유롭게 만든다. 그의 침실에서, 거실에서 마음껏 망중한을 즐기는 고양이를 보면 더욱 그렇다. 헤밍웨이가 기르던 고양이의 후손들이라는 20여 마리의 고양이는 이제는 빈 집의 주인이 되어 집안 곳곳을 누빈다.

 

                               ▲ 키웨스트에는 생각보다 물놀이를 즐길 해변이 몇 군데 없는데, 대신 바다위에 조각조각 떠있는 아름다운 섬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다시 길을 걷다가 해변에 닿았다. 키웨스트에는 서너 개의 해변이 있지만 모두 크지 않다. 작고 아담한 해변가에서 사람들은 그저 칵테일 빨대를 입에 물고 책을 보거나 생각에 잠긴다. 수영을 하는 사람은 드물고 아무도 요란한 스포츠를 탐하지 않는다. 대륙에서 떨어진 외딴마을이면서 바다와 정원으로 가득 찬 키웨스트는 여느 휴양지와 달리 평화롭고 고요하다. 헤밍웨이는 그런 키웨스트를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낮의 한 때, 고요한 바다에서 생각에 잠기다 낚시대를 드리웠을 것이고, 해가 지면 자주 간다던 바의 문턱을 넘어 술잔을 기울였을 것이다. 비극적인 가족사를(아버지, 동생, 누이가 모두 권총 자살로 숨졌다.) 떨쳐내지 못했던 그는 때때로 집 안 수영장에서 여러 여성들과 나체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최남단이라는 그 곳에서 멀리 쿠바를 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쿠바에서 건너왔다는 사람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는 키웨스트에서 '노인과 바다'를 탄생시켰다.

 

 

▲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 - 미국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일몰 중 하나인 키웨스트의 바닷가에서는 많은 펍들이 일몰 시간에 맞춰 라이브 뮤직과 다양한 이벤트를 벌인다.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보니 하늘빛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선셋 피어(Sunset Pier)'라고 적힌 바다 위 갑판에서는 길게 머리를 땋은 여가수가 무대를 준비 중이다.

잠시 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낙조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가득 차기까지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아름다운 절정을 놓치는 사람은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뿐이다. 잠시 후 낙조가 끝나면 도로가 마비된다는 게 이유다.

떠나는 버스 안에서 문득 우리의 인생이 '노인과 바다'의 노인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 나아가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싸우고, 심지어 꿈을 이루고 나서도 그 행복은 영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결국 헤밍웨이 자신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고독은 독립이다.

나는 고독을 원했으며,

오랜 세월에 걸쳐 그것을 획득했다.

고독은 추웠다.

아아, 몹시 추웠다.

그러나 고독은 또한 고요했으며, 별들이 돌고 있는 우주 공간의 차가운 고요함처럼 몹시 광대 했다.

 인도 우타프라데시주 브린다반에서'라드하 아스타미(radha ashtami)'기념행사가 열렸다.

사원에 모인 힌두교들이 노란색 잉크를 부리며 행사를 즐기고 있다.

힌두교 신화에서는 이날 라드하(radha) 가 태어났다고 여겨진다.

 라드하는 힌두교 최고신이자 신의 여덟번째 화신으로 숭배되는 크리슈나의 소울메이트다 

 

 

 

 

 

 

66세 사막 마라토너,

 

지난 1일 우헌기(66)씨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주변 산길을 뛰어오르고 있다. 10월에 참가할 남미 잉카 트레일 고산 사막 마라톤대회 준비를 위해서다.

 우씨는 3년 전 은퇴 후 사막 마라톤을 시작했다

 

 

지난해 나미비아 나미브 사막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의 우씨 모습.

 

지난 1일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의 한 등산로. 우헌기(66·서울 송파구)씨가 운동화 끈을 바짝 조였다.

일주일치 식량(10㎏)이 든 배낭을 짊어지고 산을 뛰어오르기 시작한다.

 일반인의 조깅 속도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요동친다.

그는 주 2회 자전거(겨울에는 스키)를 타거나 등산을 하면서 훈련한다.

 10월에 남미 잉카 트레일 고산사막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일주일간 약 250㎞를 쉼 없이 달리는 대회다.

 

 우씨의 극한 도전은 이번이 네 번째다.

 2011년 이집트 사하라, 2012년 미국 애리조나에 이어 지난해는 나미비아 나미브 사막 마라톤을 완주했다.

우씨는 마라톤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버스 멀미가 심해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약골이었다.

 그의 도전은 2011년 63세에 시작됐다. 공직을 거쳐 무역회사 대표에서 퇴직하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익숙한 것보다 새로운 것, 쉬운 것보다 어려운 것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라톤 1㎞를 뛸 때마다 주변에서 100~200원씩을 기부받아 파키스탄 보육원 건립을 후원하고 있다.

 

 

 

길이 가깝다고 해도 가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하며, 일이 작다고 해도 행하지 않으면 성취되지 않는다=순자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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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다.

바삐움직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8월 26일 가벼운 마음으로 춘천 마라톤신청을 했다.

10월의 가을 풍경때문이다.

일단 출사표을 던지고 그때부터 마라톤에 관한 상식을 주워담기시작하면서 바로 후회했다.

아 이런식으로 완주할수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래 일단은 남은 기간이나마 한걸음부터 시작했다

두달만에 춘천마라톤 42.195km 5시간 4분에 완주했다

2014년 동아마라톤을 미리 준비해서 4시간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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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달맞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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