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일생은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위대한 친구를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건축이나 예술은 몰라요. 다만 그렇게 자신에게 엄격하고 생활에 성실하고 매사에 품위를 지키면서 산 사람을 알았다는 것은 제 생애의 자랑입니다.” 겉으로 위대하다고 추앙받는 사람은 세상에 많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진짜 위대한 인간이 아닐까?
가정부 우르슈카 루자르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자신이 입주할 새로운 집을 찾고 있었다. 약속대로 국립건축학교 앞에 서 있는데, 잠시 뒤에 학교에서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기고 나비넥타이를 맨 초로(初老)의 교수가 나왔다. 무서운 인상에서 어렵고 깐깐한 성격이 드러났다. 그는 어디 앉자는 말도 없이 길에 서서 우르슈카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그렇게 우르슈카가 일하게 된 플레치니크의 집은 그가 직접 설계한 단순한 2층집이었지만 넓은 정원과 커다란 온실이 있었다. 독신으로 혼자 사는 주인은 학교나 현장에 가기 위해 외출할 때 외에는 종일 2층 작업실에서 일을 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대부분의 식사도 작업실에서 했으며, 심지어 잠도 작업실에서 잤다. 하지만 많은 예술가, 동료, 조수, 제자들이 수시로 집을 방문했고, 그는 그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도면을 그렸다.
이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코르나 바이러스를. 그러나 각 국가마다 백신으로 인한 대처 방안이 달라졌다. 국력에 버금가는 백신 소유로 깨어나오는 나라와 그저 오늘 내일 하고 있다 6월의 북한산입구에 있는 보리사 암자다. 이른 아침탓에 안개속에 자리한 보리사가 눈에 들어왔다
운동 역시 그렇다. 이런 반복은 고통과 지겨움을 유발한다. 하지만 임계점을 넘으며 그것은 익숙함으로 변환된다.
반복하는 것에는 리듬이 생긴다.
보상 없이도 작동한다면, 그것이 습관이다. 웬디 우드 박사는 저서 ‘해빗’에서 나이키의 ‘just do it(일단 시작해라)’이 정신력에 대한 과대평가이자 자본주의의 달콤한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시작은 결코 반이 아니라는 말이다. 결심 자체를 큰 성공으로 여기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힘을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되는 이유다.
러시아의 문호(文豪·literary lion)이자 사상가인 레프 톨스토이의 글에 나오는 내용이라는데, 어느 작품 어디에 어떻게 나온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3평(坪)’이라는 지극히 한국적 개념의 땅 넓이를 톨스토이 작품에서 어떻게 정확히 계산해냈는지도(work it out) 모르겠다.
“어느 농부가 평생토록 주인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다(work as a farmhand all his life). 어느 날 주인이 독립시켜 주기로 하고 그를 불러 말했다 “내일 해가 뜨는 순간부터(as soon as the sun rises) 해가 질 때까지(until the sun sets) 네가 밟고 돌아오는 땅은 모두 너에게 주겠다.’
평생을 머슴으로 살아온 그는 새벽을 기다리느라(wait for dawn) 한숨도 자지 못했다(do not sleep a wink). 날이 밝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start to run). 잠시도 쉬지 않고 뛰고 또 뛰었다 . 한 뙈기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in order to take possession of even one more strip of land) 끼니도 걸러가며 미친 듯이 뛰어다(run around like a chicken with its head cut off).
가슴에 맺힌 한을 풀기 위해(in a bid to resolve his deep sorrow) 그 보상을 받겠노라고 뛰고 또 뛰었다 . 뛰는 만큼 모두 자기 것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be ready to sink) 무렵, 주인집 대문으로 뛰어들었다 기진맥진해(be utterly exhausted) 쓰러졌다 그리고 끝내 의식을 되찾지(regain his consciousness) 못한 채 심장마비로 죽고(die of a heart attack) 말았다 그가 마지막까지 얻어낸 땅은 고작 ‘3평’이었다 자신이 묻히게(be buried) 된 무덤의 땅 한 쪼가리가 평생 머슴살이를 하며 뛰고 또 뛰어 자기 것으로 만든 이 세상 땅의 전부였다
영화 ‘머니볼’의 결말이 잘 이해가 되시는지. 통계학적 방법론에 기반한 구단 운영으로 미국 프로야구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주인공 빌리 빈(브래드 피트)은 왜 보스턴 레드삭스의 단장직 제안을 거절하는 걸까. 엄청난 연봉을 받을 수 있는데. 그가 구단을 운영하는 내내 강조했던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왜 정작 그 자신은 내리지 않는가. 나 말고도 같은 궁금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해외 인터넷을 찾아보면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다. 내 생각에는 감독과 각본도 이 모순을 알면서 얼버무리는 것 같다. 세상에는 돈 말고도 추구해야 할 뭔가가 있어, 하지만 그 뭔가가 뭔지는 우리도 모르겠어, 하고. 그렇게 빈이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주와 헤어져 돌아가는 길. 차에서는 딸이 아버지만 들으라며 녹음해준 노래가 흐른다. 호주의 뮤지션 렌카의 곡 ‘더 쇼’다. 인생은 미로, 사랑은 수수께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혼자서는 할 수 없네…. 노래의 결론은? “그냥 쇼를 즐겨요(And just enjoy the show).” 뭐라 해석하기 어려운 복잡한 표정을 짓는 브래드 피트의 얼굴을 카메라가 클로즈업한다.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가. 그 가치를 위해 다른 건 얼마나 포기해야 하는가.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아마 그 답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래가 답한다. 그냥 인생이라는 이 쇼를 즐겨요
영화 '레이더스'(1982) 당신은 왜 뺏긴 것만 생각하나... “난 내가 가진 것을 알지.”
인디아나 존스 박사(해리슨 포드)는 두 시간 동안 나치와 싸우며 온갖 고생을 다한 끝에 성궤를 찾는다.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판을 담았다고 하는 그 물건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 구한 귀중한 고고학 유물을 미국 정부가 비밀 창고에 집어넣더니 존스 박사더러는 손을 떼라는 것 아닌가. 존스 박사는 정부 요원들과 회의를 마치고 건물을 빠져나오며 분통을 터뜨린다. “멍청한 관료 녀석들! 자기들이 거기 뭘 갖고 있는 건지 몰라.” 그런 그에게 연인 마리온(캐런 앨런)이 건네는 말. “음, 난 내가 여기서 뭘 갖고 있는지는 아는데(Well, I know what I’ve got here).” 그리고 술 한잔하러 가자고 한다. 마리온은 그 장면에서 그런 말을 할 만하다. 네팔에서 오랫동안 고생하다 겨우 미국에 돌아온 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참 이상하다. 늘 곁에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른다. 자신이 여태 갖지 못한 것, 놓친 것에 대해서만 골똘히 생각한다. 중요한 걸 빼앗겼다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느낄 때, 이 대사를 읊으며 내가 여전히 지닌 것들을 살피려 애쓴다. 몸 건강하네! 기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시간도 한참 남아 있네! 좋은 술 한 잔 사 마실 여유도 있네! 내가 성궤처럼 유일무이한 물건을 놓친 것도 아니잖아? 소중한 내 마음을 울화로 채우지 말자고 다짐한다.
영화 '재키 브라운'(1997) 더 늦기 전에 성숙하게, 의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1997년 영화 ‘재키 브라운’의 마지막 장면이다. 주인공 재키 브라운(팜 그리어)은 자신을 쫓는 뒷골목 악당을 제거하고 형사를 속이는 데 마침내 성공한다. 그 일을 보석 보증인인 맥스 체리(로버트 포스터)가 도왔다. 이제 두 중년 남녀는 이별을 앞둔 상태다. 상대에게 호감은 있지만 미래를 함께하려니 피차 부담스럽다. 사기극에 끌어들인 일을 놓고 자신을 오해할까 봐 신경 쓰인 재키가 맥스에게 말한다. “난 당신을 이용한 적 없고, 당신한테 거짓말한 적도 없어요. 우리는 파트너였어요.” 그러자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답변하는 맥스. “난 56살이에요. 내가 한 일을 두고 남 탓할 순 없어요(I’m 56 years old. I can’t blame anybody for anything I do).”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니, 요즘 들어본 지 오래된 말이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이 대목에서 잠시 숨을 멈췄다. 그런 멋있는 말을 하는 50대 사내에게 반해 버렸다. 나도 늦기 전에 저렇게 의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성숙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남 탓을 많이 하지만, ‘언젠가는’이라는 희망은 품고 있다. 그러고 보니 56살까지 꼭 10년 남았다.
영화 '대부3'(1990)의 알 파치노와 앤디 가르시아 “절대로 적을 미워하지 마라. 판단력이 흐려지니까.”
영화 ‘대부’ 시리즈에는 명대사가 잔뜩 나온다.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지.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둬라. 우정과 돈은 물과 기름이다…. 내가 최고로 꼽는 대사는 3편에 있다. 대부 마이클 콜레오네가 조카 빈센트를 데리고 다니며 후계자 교육을 시킬 때다. 젊고 과격한 빈센트는 경쟁 조직의 두목에 대해 잔뜩 화가 나 있다. 빈센트가 라이벌에게 잔인하게 복수할 방법을 떠들어대려 하자 마이클은 “안 돼!” 하며 호통을 친다. 그리고 이유를 설명해준다. “절대로 적을 미워하지 마라. 판단력이 흐려져(Never hate your enemies. It affects your judgement).” 말 그대로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 해코지를 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엄두까지는 안 난다. 하지만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나 자신을 위해서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내가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헷갈리게 된다. 그야말로 간단하고 합리적인 결론인데, 실천하기는 참 어렵다. 아마 인간 본성이 소규모 부족 사회에 맞게 진화했기 때문인 것 같다. 작은 사회에서는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평판이 생겨야 이후 인간관계나 거래에서 손해 보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성공하는 데 그런 평판은 필요 없다.
영화 '귀여운 여인'(1990) 소셜미디어는 毒... “남들이 깎아내리면 당신도 믿게 되죠.”
’귀여운 여인'은 개봉 직후부터 지금까지 30년간 숱한 비판을 받았다. 뭐, 다 일리 있는 비판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가 단순한 신데렐라 스토리 이상이며, 지나치게 과소평가되고 있다고도 믿는다. 이 작품은 자신을 혐오하는 두 사람이 만나 상대를 치유하고 치유받으며, 마침내 서로를 구원하는 과정을 상세히 그린다. 거리의 여인 비비안 워드(줄리아 로버츠)는 기업 사냥꾼 에드워드 루이스(리처드 기어)와 지내는 동안 서서히 자존감을 되찾는다. 에드워드가 자신을 성매매 여성으로 대하자 돈을 포기하고 헤어지려 들기도 한다. 그렇게 다투고 화해한 밤, 비비안은 과거를 고백한다. 자신이 어떻게 해서 매춘을 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서 자기혐오에 빠지게 됐는지.” 사람들이 당신을 오래 깎아내리면, 어느 순간 당신도 그걸 믿게 되죠(People put you down enough, you start to believe it).” 그게 인간의 심리이니, 그런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흘려들을 줄 알아야 한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소리를 들을 기회 자체를 줄이는 건 어떨까. 나는 얼마 전부터 소셜 미디어에 거의 접속하지 않는다. 그게 점점 더 효율적으로 사람을 깎아내리고 상처를 주는 도구가 되는 것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