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20일 서울대 사회과학대 교수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터뷰] 내달 정년퇴임하는 이준구 경제학 교수
“세금 더 걷더라도 자원외교같은 해괴한데 말고 보육에 쓰자”
‘좌빨’ 이준구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진보적인 발언과 사회경제 이슈에 대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온 경제학자 이준구 교수(서울대 경제학부·65)가 34년간 몸담았던 대학강단을 떠난다. 다음달 정년퇴임을 앞두고 <한겨레>가 20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국내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자신의 블로그(http://jkl123.com/)에 사회경제 이슈에 대한 소신발언을 가끔씩 올리고 있고 블로그 글마다 1만 조회수를 넘을 정도로 ‘파워블로거’로 이름을 떨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시대 지식인의 책무 △젊은이들의 고뇌 △사회경제적 이슈 진단 및 한국경제가 당면한 과제 △한국 경제학자의 보수적 편향 등을 주제로 1시간 30분동안 이뤄진 인터뷰에서 이 교수는 “우리 사회와 경제에 (글)쓸 일이 너무나 많아져 현실에 적극 개입하게 됐다”며 “(신자유주의 사회경제정책을 주창하고 확산시켜온) 직업으로서의 한국 경제학자들의 극단적인 보수 편향은 지금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자 기이한 현상”이라고 토로했다. 평생동안 정치 및 권력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오며 전공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온 노교수는 뜻밖에도(?)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배의 추억’을 떠올리며 “젊은날 시국문제에 비겁하게 물러서 있었던 내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감이 늘 있었는데, 이것이 점차 나이들면서 현실 문제에 적극 개입하게 된 개인적 배경이기도 하다”고 <한겨레>에 처음 털어놓았다.

“재벌 2·3세 경영권 상속
아버지가 금메달 땄다고
자녀를 올림픽대표 뽑는 것

경제학계 보수편향은 의문
분배 공정성 관심 적어
나를 진보 분류 기이한 일

김근태의원 고초겪을 때
데모 안해 죄책감 가져
그래서 5공 시국선언 참여” 


-연구실 문에 내붙인, 불도저를 뒤덮으며 여기저기 피어난 쑥부쟁이 아래로 ‘끈질기게 피어라. 너희가 강의 주인이다’는 글귀가 선명하다. 2010년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현실 문제에 개입하는 발언들을 해왔다. 엠비(MB) 정부의 또다른 ‘31조원 자원외교’를 둘러싼 국회 국정조사를 앞두고 있는데…

=자원확보, 물론 한국경제에서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어떤 중요한 일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느냐가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데 자원외교는 그 점을 무시했다. 당시 이를 추진했던 사람들은 자원외교가 필요했고, 본래 그 성과는 먼 훗날에나 나온다는 식으로 변명하면서 피해가려한다. 그러나, 먼 훗날에 나올 효과도 중간에 점검해보면 올바르게 투자한 건지 지금 단계에서 판단이 나온다. 실패로 이미 거의 판명되고 있는데, 갑자기 반전되겠는가? 혹시나 원유가격이 1배럴에 5백달러로 뛰면 우리가 옳았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그걸 대비했다는 건 말도 안된다. 200년 만에 한번 올지 모를 홍수를 대비했다는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내가 재정학 전공인데 정부 예산과 관련해, 지금 세간에 오르내리는 어린이집 보육교사 아동폭행 사건의 경우, 보육교사의 급여를 올려주는 방식으로 가야 문제를 줄일 수 있다. 어린이집 보육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매우 큰데 적절한 보수를 주는 정규직 보육교사를 늘리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되고 이런 지출은 불황 대비책도 되고 경제성장도 견인할 수 있다. 국민들의 복지지출 관련 세금 부담이 조금 늘더라도 걷힌 세금과 정부 예산을, 자원외교나 4대강 등 해괴망측한 데 쓰지 말고 그런 곳에 유용하게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

-일자리 창출 관련해, 최근 청년실업률이 9%로 역대 최악이다. 대기업이 당장의 성과에 매달리면서 경력직 채용만 선호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아무튼 취업난은 우리 시대 젊은이들이 현실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고통이자 좌절인데…

=우리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들어가면서 이제 고용창출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어렵고, 기업이 신규투자해도 인력투입을 최소화하는 생산방식으로 가고 있어서 근본적으로 ‘고용없는 성장’에 직면하고 있다. 청년실업 대책 중 하나로 정부가 (창조경제 관련해) 벤처 육성에 나서고 있는데 창업을 북돋는다고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그런 정보기술 중심의 벤처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창조적인 몇 사람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지 일반 직원을 대규모로 고용하는 기업이 아니다. 고용창출 효과가 큰 중소기업을 더 확장하고 키우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른바 “연말정산 세금폭탄”을 둘러싼 월급쟁이들의 분통이 지금 터져나오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애초에 원천징수를 충분히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적게 해서 이런 논란이 나오는 듯하다. 월급봉투에서 원천적으로 떼는 세금 징수율을 적게해 처분가능소득이 크다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닌가싶다. 이번 논란은 세율을 올려서 문제가 된 게 아니고,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소득구간에 따라 공제액의 변화가 발생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소득계층간 부담 측면에서 볼때 세액공제로 바꾼 건 올바른 방향이다. 내가 무엇이든 정부 정책을 헐뜯는 사람은 아니다. 직장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지만 근본적으로 정책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새해 벽두 담배값 인상도 큰 이슈가 되었다. 재정학자로서, 흡연자와 비흡연자, 부유층과 서민, 국가의 재정수입, 국민 건강 등을 고려할 때 최적의 담배값 시장가격은 존재할 수 있는가?

=세계 각국마다 정책적 의도에 따라 담배값이 천자만별이라서 어느 일국에서 적정한 담배값이 얼마인지 도출하는 건 본질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금연을 권하는 정부의 의지가 얼마나 결연한지가 관건인데, 재정학에서 담배세는 일종의 ‘죄악세’로 설명하고, 나도 인상에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죄악세는 세금을 무겁게 물려 사람들이 금연으로 돌아서면 건강 증진이라는 정책목표가 달성되어 좋고, 반대로 흡연자들이 버티고 계속 흡연하면 재정수입이 증대되므로 정부는 그 역시 행복한 세금이다. 그러나 왜 하필 지금 인상인가? ‘증세없는 복지’라는 실현 불가능한 약속을 애초 정부 출범 때부터 했다. 사회복지를 대폭 확충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한데, 어떤 방식으로 증세할 것인지 놓고 건전한 토론을 거쳐 담배세 인상이 그 답이라고 찾았다면 찬성한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잘못된)약속은 그대로 둔채 체면 유지하고, 세수가 궁색하니 손쉬운 담배세 인상을 선택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딱 좋은 상황이다. 배나무 아래서 갓 끈을 고쳐매지 말라했는데 아예 배를 따려고 하는 것이 국민들 눈에 보인 것이다. 서민 생계비만 더 올린다는 부정적 측면만 사람들이 보게 되는 게 당연하다.

-저성장, 수요부진에 따른 디플레이션 우려, 우리 경제의 등뼈인 제조업의 전반적인 수익성 악화 등 한국경제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우리 경제의 성숙단계상 피할 수 없는 추세와 현상들인가?

=우리 경제는 그동안의 고도성장 동력이 소진돼가는 과정에 들어서 있다. 즉 어차피 저성장 기조로 들어가야 할 때가 되었고, 여기에 겹쳐 세계 경제가 모두 저성장 기조로 가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한층 가중되고 있고 또 불가피하다. 다만 이왕 이렇게 어려울 바에는 주택경기를 띄우는 것같은 단기적 부양으로 가지 말고 장기적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경제 견실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부동산경기는 반짝하고 마는 것일뿐 경제의 성장동력과는 무관하다.

-체질 개선과 견실화를 좀더 설명해달라

=경제에서의 질서, 곧 게임의 규칙을 제대로 확립해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민주화, 갑의 횡포를 없애는 공정한 룰을 만드는 작업 등이다. 이런 경제 질서 확립이 곧 장기적으로 소득증대가 정말로 필요한 계층에게 소득이 돌아가게 하는 기초가 된다.

-방금 소득분배와 관련해 말했는데, 최근 한국경제가 수출 및 기업주도 성장에서 벗어나 임금 및 소득 또 내수가 이끄는 성장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임금과 소득을 높여 내수를 활성화해야 하는 건 맞다. 다만 기업이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끌어안고 있는데, 배당을 더 해주라는 식으로 소득을 늘려주려는 정책은 주식을 많이 가진 부유층과 외국인투자자의 주머니만 더 두둑하게 해주는 일이다. 또 임금을 올려주라는 정책은 대기업 노동자의 보수를 더욱 늘리는 쪽으로 갈 공산이 크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시장 매커니즘에서 힘의 균형이 대기업 쪽에 가 있는데 그 힘을 발휘하지 말고 약자한테 잘해주라는 식으로 경제정책을 펴기도 어려운 점이 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정부가 개입해 직접 그 단가를 결정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작고한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 같은 분들이 필요하다. 삼성과 현대차 등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좀더 관대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땅콩 회항’으로 대표되는 재벌기업 오너와 2·3세의 일탈적 행동이 요즘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 재벌기업 체제가 가족기업 형태인데, 오너가 마치 주인처럼 행세하면서 자기 임직원을 하인 다루듯 하는 문화는 다른 나라에선 보기 힘들다. 또 회삿돈을 개인 가계부마냥 가져다쓰는 기업문화의 미성숙까지 결합되어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더 복잡해지고 있다. ‘땅콩 회항’ 사건의 경우 우리는 여론재판으로 징벌하고 말았지만, 내가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면 도대체 수많은 승객들을 두고 뭐하는 짓이냐고 당장 말했을 것이다. 승객 서비스라는 관점에 보면, 옆에서 고성 지른 조현아 전 부사장은 사무장이나 승무원에게뿐 아니라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비행기가 늦게 출발하게 된 고객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똑똑하고 야심만만한 젊은이들이여, 우리 기업에 오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상속자본 등 세습자본주의는 우리가 미국보다 현저하다. 미국의 억만장자 중 세습은 10명 중 2~3명인데 한국은 8명 이상이라고 한다. 세습자본에 대한 피케티의 메시지가 서구에 비해 우리 사회에 더 잘 들어맞고 있는 셈이다. 기업의 경영권 대물림은 올림픽 대표팀을 구성할 때 실제로 100m 뛰어보게 한 뒤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는지에 따라 뽑는 거나 다름없다.


-이번 정년퇴임 기념으로 제자들이 펴낸 <꽃보다 제자>라는 문집에 보면 한 후학이 “교육자와 연구자로서 늘 같은 자리를 지키며 외길을 걸으셨다. 한결같다는 것,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일인가”라고 적고 있다. 한국의 여러 경제학자들이 ‘경세’를 표방하며 대학강단을 벗어나 이런 저런 정치적 조직에 몸담고 활동하는 모습을 흔히 보는데…. 

=나는 남들에 대해 얘기하는 걸 천성적으로 싫어한다. 다만 스스로 그런 정치적 활동의 가능성을 전혀 열어두지 않은 건 내 자신이 그런 일에 전혀 맞지 않고 능력도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절감했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소수도 있겠지만, 교수라는 직업군에 속한 대다수는 사람을 다루고 조직을 운영하고 또 집권세력 내부에 들어가 인파이팅(기존 질서에 맞서 개혁을 추진하는)하는 데 능력이 별로 없다. 나는 내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곳은 학교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외부의 정치적 조직 등에 다른 일자리를 얻었다면 아마도 첫 출근하는 날부터 스스로 후회하게 될 게 뻔하다.(웃음)

-블로그에 최근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대한 글을 올렸다. 우리사회의 소득불평등 심화와 분배의 공정성과 관련해 우리 학계에서 ‘직업으로서의 경제학자’의 책임이나 무능, 무관심 등이 그 한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피케티 열풍은 그동안 경제학자들이 분배 문제에 너무 관심을 안 가져온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즉 소득불평등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자각하는 계기를 제공한 게 열풍의 한 이유다. 내가 몸담고 있는 주류경제학은 분배 문제에 별로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왔다. 분배 공정성은 가치판단의 문제라서 경제과학적 분석의 영역을 벗어나고, 그래서 경제학자들이 다루는데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경제학자들이 그동안 미국사회는 어느 정도 분배 공정성이 이뤄졌다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최근엔 현실경제에서 급격한 분배 악화가 나타나면서 그 생각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반면에, 한국 경제학자들은 분배 공정성에 대한 관심이 미국 경제학자보다 훨씬 적다. 시장이냐 국가 개입이냐는 관점의 진보와 보수 스펙트럼에서 미국 경제학자들은 다양하게 분포하는 반면, 한국 경제학자들은 보수 쪽에 거의 쏠려 있다. 왜 그럴까? 이건 나의 오랜 풀리지 않은 의문이다. 한국에서 분배 공정성이 상대적으로 잘 이뤄졌다면, 또 시장이 좀더 완전해 정부개입의 필요성이 적다면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와 시장의 여러 상황을 보면 우리 경제학자들이 좀더 진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자연스러울 듯한데 현실은 그 반대다. 우리 경제학계의 이념적 지형은 참으로 이상하다. 내가 미국에 가면 중도 밖에 안되고 ‘진보’로 불릴 수 없는데, 한국사회에선 나를 진보 경제학자로 부르고 있다. 내게 ‘좌빨’ 칭호가 붙었듯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좌빨로 매도하는 일반적인 경향이 있긴 한데, 경제학자 그룹 속에 가봐도 나는 상당히 진보적인 학자로 분류되고 있다. 기이한 일이다.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과정 유학할 때 미국 지도교수는 진보적인 사람이 많은 편인데, 왜 한국에 돌아와서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는 걸까?

-‘연구’와 관련해 퇴임 이후 구상은?

=두 가지다. 첫째,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신자유주의와 관련해 그동안 내가 써온 논문들을 모아 책으로 펴낼까 한다. 그것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꿈은 마치 한국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려 했던 것 아니냐는 착각을 갖게 한다. 영어몰입교육이나 감세정책,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미국을 미국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사회경제로 만들었는데, 우리가 이를 성찰 없이 그대로 계속 직수입하면 우리 역시 불평등이 더 심화되는 경제로 치닫게 될 위험성을 경고하려는 게 목적이다. 우리 사회는 이상하게 보수적이다. 이미 실패한 것이 자명한데도 세금 깎아주면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막연하게 믿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환상이 여전히 강하다. 미국에서 막대한 재정적자와 불평등 심화라는 부작용만 초래한,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판명된 것인데 우리 경제정책담당자와 경제학자들이 이를 알고서 답습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다.

둘째, 과거 노무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를 당시에 나 혼자만 두둔했는데, 종합부동산세의 죽음이 아직도 아쉽다. 그런데 부동산 과세의 경제학적 근거를 최근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새삼 발견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경제학자들이 쓴 논문을 보면 부동산 등 재산에 대한 과세가 여러 세목 중에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조세를 평가하는 기준에 효율성과 공평성 이 두 가지가 있다. 조세 부과로 민간부문의 의사결정을 교란시키는, 예컨대 근로소득세를 부과하면 사람들이 일을 적게 하게 되고 이자소득세를 높이면 저축을 적게 하는 것인데, 부동산 과세는 그런 초과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 세금을 피할 수 있는 별다른 옵션이 없기 때문이다. 즉 부동산은 이동성이 없어서 다른 나라로 옮기거나 튀어 피해갈 수 없다. 부동산 과세는 경제의 효율성도 높이고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내가 뒤늦게 발견한 셈이다. 재산분포가 소득분포보다 훨씬 편중돼 있기 때문에 공평성도 달성된다. 이런 논문들을 모아 책으로 소개해보려한다.

-사실 30만권 이상 팔린 <미시경제학> 교과서의 저자인 ‘이준구 교수’가 왜, 어떤 이유로 현실에 적극 개입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젊은 시절에 우리 사회의 이슈들에 대한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강단에서든 글로든 표현하는 건 내 스스로 극도로 삼갔다. 그런데 나이가 점차 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사회에서 고쳐야할 점이 있다면 지식인이 이를 지적하고 문제 있다고 얘기하지 않으면 개선되기 어렵다고 느꼈다. 자기가 배운 바를 사회에 투영해 문제점이든 올바른 방향이든 지적하고 말하는 게 지식인의 큰 책무라고 자각하기 시작한 셈이다.

또 한 가지, 솔직히 말하자면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노무현 정부가 억울하게 매를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구도 용기를 내 노무현 정부를 두둔하지 않고 있었다. ‘3불 교육정책’이나 종합부동산세 등 당시 정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 대목들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보수 언론과 보수적 지식인으로부터 공격받고 몰매를 맞았다. 그때 나와 같은, 정부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 나서 발언하는 게 효과가 있을 듯해보였다. 당시 경제성장률이 4%대로 떨어진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했는데 그건 단지 착시 현상일뿐 당시 경제 상태로 보면 그 정도는 견실한 성장률이라고 내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부자감세와 4대강 사업 등이 터져나오면서 ‘(글)쓸 일이 너무나 많아져’ 현실 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된 것이다.(이 교수는 현실 이슈에 개입하더라도 블로그 등을 통한 활자 글을 매개로 주로 발언할뿐 인터뷰 같은 ‘말’을 중간 매체로 삼는 건 가급적 피하는 편이다.)

여기에 더해 한 가지 덧붙일 게 있다. 내가 2013년에 블로그에 ‘김근태 선배님의 추억’이란 글을 쓴 적 있다. 돌아가신 민주주의자 김근태 의원이 민주화를 위해 숱한 고초를 겪었는데 나는 그 시절에 데모에 한번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안락한 생활을 해온 죄책감이 있다. 사실 전두환 정권 말기에 개헌을 요구하는 교수 시국선언에 내가 서명해 참여했다. 당시 서울대 교수 1천여명 중 참여자가 40여명 밖에 안될 정도로 서슬퍼런 군부정권 시절이었다.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과거 학생시절 나의 모습에 대한 속죄의 심정으로, (당시에)지금이라도 참여하지 않으면 비겁하게 살았다고 두고두고 후회할 것같아서였다. 현실개입 발언들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의 행동은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대학과 입시, 우리 시대의 젊은이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면서 인터뷰를 마칠까 한다.

=현행 대학 입시제도는 서울대를 포함해 어느 대학에서든, 입학사정관제를 중심으로 볼 때 누가 붙고 떨어질지 불확실성이 크고 또 어떤 과정을 통해 누가 합격하게 되는지 다소 불투명한 소지가 분명히 있다. 이에 대한 심도있는 반성이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는데, 입시제도를 선도하고 있는 서울대 내부를 포함해서 충분하고 깊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입학사정관제가 과연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개인적 주관에 의해 판단되고 있을 소지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교수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교수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로 수많은 제자들과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쓰고 있다. 학점, 행복한 삶, 진로 등을 놓고 고민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10여편을 써 올려두고 있다. 노교수로서 한마디 해주신다면?

=은퇴를 맞아 대학생들에게 따로 해주고 싶은 말을 정리하자면, 요즘 학생들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큰데 “불안해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삶은 누구나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처음에 좋은 직장에서 출발했어도 앞으로의 삶은 불확실하다. 그것이 어차피 삶의 본질이다. 요즘 세대는 우리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곱게 자라서 역경에 대한 두려움이 큰데 너무 불안해할 필요 없다. 다만 일반적인 인생지침서는 말하거나 쓰고 싶지 않다. 그런 책은 옳은 말들이긴 하나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것이라서 다 읽고나면 허탈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 욕심을 버리라거나 햇볕 좋은날 산보를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햇볕요법도 곧잘 해주고 있다. 마음을 조금만 더 비우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면 그만큼 편해진다. 많은 일에서 오히려 루틴한 버릇같은 것을 만들어놓으면, 또 선택의 여지없이 그냥 정해진대로 살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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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땐 말없이”…기념논문집·고별강연 사양

34년간 꼿꼿한 학자의 길 걸어

이준구 교수는 한마디로 흔치 않은 지식인이다. 어느 정도 이름을 얻은 한국의 경제학자라면 흔히 맡는 대기업의 사외이사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제안을 받아본 적도 없다”고 한다. 옛 경부고속철도평가위원 같은 일회적인 참가를 빼고는 1984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뒤 정부의 이런저런 위원회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서울대에서 연구진실성위원회 위원장을 한 것을 빼면 행정조직의 보직 자리에 가서 일해본 일도 없다.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면서 명리에 물들지 않고 한결같이 살아온 34년 지식인의 역정 그 자체가 곧 우리 사회 지식인의 표상인 듯 보인다. “떠날 때는 말없이 가야 한다”며 정년퇴임 기념논문집 발간도 고별강연도 마다했다. 대신 제자 27명이 애틋한 추억을 담아 쓴 <꽃보다 제자>라는 자그마한 문집 하나와 자신이 틈틈이 찍어온 서울대 교정의 사계 사진들을 넣은 달력 하나만 남겼다.

“학문에는 은퇴가 없다”는 말을 몸소 일깨우려는 것일까. 퇴임 뒤에도 강의실에 수백명이 듣는 초급 ‘경제원론’ 강의를 5년간 더 하고, “30만권 플러스 알파”가 팔렸을 정도로 “25년간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아 자부심이 있다”는 <미시경제학>을 비롯해 <재정학> 등 교과서(현재 4~6판)를 끊임없이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수강생이 많아 채점하기 벅차다는 이유 등으로 흔히 대학에서 시간강사에게 맡기는 과목이 초급 ‘경제원론’인데 노교수는 지난 마지막 학기까지도 ‘경제원론’ 강의를 맡았다. “경제학에 입문하는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점에서 원론은 매우 중요한 과목이고, 또 폭넓은 이해와 원숙한 이해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가르치는 게 맞아요. 내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날 인터뷰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러 간 대학 구내식당에서 노교수는 학생들과 뒤섞인 채 긴 밥줄에 서 차례로 배식을 받았다.

지영수겸

(持盈守謙)

 

 

"빈천은 근검을 낳고,

근검은 부귀를 낳는다.

 

부귀는 교만과 사치를 낳고,

교만과 사치는 음란함을 낳으며,

 

음란함은 빈천을 낳는다.

여섯 가지 길이 쳇바퀴처럼 돈다.

 

貧賤生勤儉, 勤儉生富貴,

富貴生驕奢, 驕奢生淫佚,

淫佚生貧賤. 六道輪回.

 

 

청나라 진홍모(陳弘謀)가 엮은

'오종유규(五種遺規)'에 나오는 말이다.

 

 

빈천에서 근검으로 노력한 결과 부귀를 얻었다.

부귀를 얻고 눈에 뵈는 게 없어 교만과 사치를 일삼았다.

교만과 사치에 취해 방탕에 빠지니 잠깐만에

다시 빈천의 자리로 돌아와 있다.

한때의 부귀는 꿈이었고 앞뒤로 뼈저린 빈천만 남았다.

 

 

당나라 때 유빈(劉玭)이 자손에게 남긴 경계다.

 

"훌륭한 가문은 조상의

충효와 근검에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고,

자손의 둔하고 경솔하고 사치하고

오만함에 말미암아 엎어지지 않음이 없다.

세우기가 어려운 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 같고,

뒤집혀 실추하기 쉽기는

터럭이 화톳불에 타는 것과 한가지다

 

名門右族, 莫不由祖先忠孝勤儉,

以成立之, 莫不由子孫頑率奢傲,

以覆墜之. 成立之難, 如升天,

覆墜之易, 如燎毛."

 

'신당서(新唐書)'에 나온다.

 

 

명나라 때 육수성(陸樹聲)이 '청서필담(淸暑筆談)'에서 한 말은 이렇다.

 

"부(富)는 원망의 곳집이요

귀(貴)는 위태로움의 기틀이다.

이는 부귀하면서도 도리에 어긋나게 처신하는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만약 영리에 처해서도 거기에만 골몰하지 않고

가득 찬 상태에 있으나 그칠 줄 알아

가득 참을 유지하면서 겸손을 지킨다면

원망의 곳집이니 위태로움의 기틀이니 하는 말이 어찌 있겠는가

 

富者怨之府, 貴者危之機.

此爲富貴而處之不以其道者言之也.

乃若處榮利而不專, 履盛滿而知止,

持盈守謙, 何怨府危机之有哉?"

 

지금 내가 누리는 부귀는 다른 사람의 원망과 한숨에서 나왔다.

발밑에는 위기가 늘 도사리고 있다.

'지영수겸(持盈守謙)', 가득 참을 유지하더라도

겸손의 뜻을 잊지 않아야만 원망도 위기도 없다.

 

 

사람이 이 간단한 이치를 자꾸 잊으니까

멀쩡히 잘 가던 비행기를 돌려세우고,

수억짜리 외제차로 광란의 폭주를 벌여

선대에서 쌓은 것을 실추시키고

나아가 제 몸을 망친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오랫만에 카메라를 가져나갔다.

예전에는 반드시 가져다닌 소지품이었는데

무게땜에 포기했다.

휴대폰으로 간간히 찍기였다.

그럴때마다 아쉬운 마음이란

 

역시 매력적인 셔터소리

아나로그에서 디지털로 탈바꿈은 했지만

어디 휴대폰이 카메라를 따라올수 있겠는냐

 

체력보강해서 촬영의 매력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겨울이란 역시 눈이 포함된 그것이 겨울의 매력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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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출신 대통령 우루과이의 무히카 … 2월말 퇴임]

-파란만장한 傳記 선풍적 인기
게릴라 시절 14년간 옥살이… 땅굴 파서 두 차례 탈출도
아내 소유 시골농가에 거주… 재산은 몇 개의 농기구와 1987년형 자동차가 전부
월급 90% 사회단체등에 기부
퇴임 후엔 상원의원 복귀

1960년대 후반, 당시 30대 초반 젊은이었던 호세 무히카는 좌익 무장 게릴라 조직 '투파마로스'에서 활동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옆으로 가늘게 찢어진 눈을 보면 평범한 시민들조차 단박에 그의 정체를 알아차릴 만큼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지명 수배자였다.

장례 행렬을 위장해 경찰 눈을 피했고, 카지노를 턴 뒤엔 카지노 직원들에게 훔친 돈의 일부를 나눠 주기도 했다. 타임지(誌)는 그가 속한 투파마로스에 '로빈 후드 게릴라'라는 별명을 붙였다.

네 차례 경찰에 체포됐는데 그중 한 번은 총격전을 벌이다 경찰이 쏜 총 6발을 맞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감옥에선 두 차례 땅굴을 파 탈출했다. 하지만 다시 붙잡혀 모진 고문을 견뎌야 했다. 당시 우루과이에선 '콘도르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좌파 인사 탄압이 한창이던 때였다. 14년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1985년 출소한 뒤, 1989년 진보정당을 만들어 정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2009년 11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궁을 마다하고 교외 허름한 농가에서 소박한 생활을 하고 있는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오른쪽 사진). 왼쪽 사진은 총 14년간 감옥 생활을 마치고 1985년 출소했을 당시 모습. /AFP·가디언'무장 게릴라 대원에서부터 대통령까지'. 이 같은 굴곡의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 바로 호세 무히카(80) 우루과이 대통령이다. 브라질 일간 폴랴 지 상파울루는 2월 말 임기가 끝나는 무히카 대통령의 전기 '조용한 혁명'이 우루과이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우루과이 언론인 마우리시오 라부페티가 쓴 이 책에는 무히카 대통령이 게릴라로 활동했던 시절과 감옥 생활 회고담, 세상에 알려진 자신의 소문에 대한 대통령 본인의 증언 등이 담겨 있다. 조만간 10여개국에 번역될 예정이다.

책이 인기를 끈 데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내용뿐 아니라, 무히카 대통령의 높은 국민 지지도도 한몫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분석했다. 무히카 대통령은 외신에서 '세계에서 가장 검소한 대통령' 혹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일컬어진다. 책에도 그런 검소한 면모가 자세히 소개돼 있다.

무히카 대통령은 대통령궁을 노숙자 쉼터로 내주고, 자신은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떨어진 한적한 시골에서 아내가 소유한 농가에 거주한다. 작년에 그 집을 찾아가 인터뷰한 영국 가디언지(紙)는 외관을 이렇게 묘사했다. "단층집은 나뭇잎으로 반쯤 가려져 있고, 겨울비가 군데군데 흔적을 남긴 회반죽 벽이 양철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재산 목록에 기재된 전 재산은 농기구 몇 개, 트랙터 두 대, 28년째 손수 몰고 다니는 연한 하늘색의 1987년형 폴크스바겐 비틀이 전부다. 작년 6월 볼리비아에서 열린 개발도상국 그룹 G77 정상회의 기간에 한 아랍 부호가 이 유명한 자동차를 100만달러에 사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매달 받는 월급(약 1300만원)의 약 90%는 사회복지 단체와 소속 정당에 기부한다. 그는 회의 석상이나 여러 인터뷰에서 "나는 가난한 대통령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절대 가난하지 않다. 삶에는 가격이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무히카 대통령은 재임 기간 5년 동안 정치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꾀했다.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고,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동성(同性) 결혼도 인정했다. 하지만 작년 6월 브라질 일간 에스타두 지 상파울루 인터뷰에서 그는 "그 어떤 것도 빈곤과 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빈곤을 줄이고 노동 기회를 늘린 점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들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노동자 최저 임금은 50% 인상됐다.

앞으로 한 달여 남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면 그는 상원의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무히카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은 2009년 11월 대선 투표 당시 득표율(52%)보다 높은 65%다.

 

 

 

 

바람따라 길 떠났다

춥다고 춥다고

움크린 시간속에 속수무책으로 있었던 시간때문에 여전히 맘이 가슴이 심장이 아프다

이미 돌아올수 없었던 다리를 건넌지는 오래되었다

무능하고 너무한 무능한 자신

돌아올수있는길과 돌아올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진실을 모른체

시간을 죽였다

 

당신들이 떠난 그 나라는 맘이라도 편히 계시길 바랄뿐입니다.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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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다카르 랠리' 스타트… 사막·산맥 등 2주간의 대장정사고 많아… 완주율 30~40%

'21세기 오디세우스'의 모험이 막을 올렸다.오디세우스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주인공. 트로이 전쟁 영웅인 그는 10년간 괴물과 자연재해 등의 고난을 헤치고 귀향에 성공한다. 5일(한국시각)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그에 못지않은 험난한 여정을 펼칠 이들이 출발선을 떠났다. 2015 다카르 랠리에 참가한 665명의 출전자다.선수들은 자동차·트럭·바이크·4륜 바이크 등을 타고 2주간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 해발 6900m에 이르는 안데스 산맥 등을 무사히 통과해야 결승선에 다다른다. 총 코스 길이는 약 9290㎞. 잠은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잔다. 중간 휴식일은 하루뿐이다. 참가자들은 하루에 500~1000㎞씩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보통 연료는 2000L가량(자동차 기준)이 소요된다고 한다.

지상 최대의 오프로드 경주 대회인 다카르랠리가 5일(한국 시각)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막을 올렸다. 자동차 부문에 참가한 로비 고든(46·미국)의 허머 차량이 먼지를 일으키며 힘차게 질주하고 있다. /AP 뉴시스

올해로 37회째를 맞은 다카르 랠리는 '죽음의 경주'로 악명이 높다. 그간 60여명이 충돌, 운전 실수, 지뢰 폭발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1979년 이 대회를 창설한 프랑스의 모험가 티에리 사빈도 1986년 헬리콥터로 코스를 돌아보다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출전자들의 완주율은 평균 30~40%에 그친다. 원래 대회는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해 세네갈의 다카르를 종착점으로 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대회에 앞서 프랑스 여행객이 무장 괴한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후 주최 측은 테러 위협을 고려해 대회 장소를 남미로 옮겼다.위험천만한 레이스에서 우승해도 상금은 없다. 오히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2000만원의 참가비를 내야 한다. 그런데도 BMW·혼다·도요타·KTM 등 세계 유명 자동차·오토바이 업체의 후원을 받은 프로 드라이버들과 극한의 짜릿한 경험을 원하는 아마추어들이 목숨을 걸고 몰려든다. 올해는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사인 푸조가 25년 만에 팀을 꾸려 다시 나왔고, 스페인 에너지 기업 악시오나는 사상 처음으로 전기차를 내보냈다.우승 후보를 예측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다. 예기치 않은 사건과 사고가 줄을 잇기 때문이다. 지난해 자동차 부문 챔피언 나니 로마(스페인)는 이날 진행된 1구간(부에노스아이레스-비야 카를로스 파스·약 837㎞)에서 충돌로 인한 차량 고장으로 6시간가량 움직이지 못해 이미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대신 아르헨티나 출신의 올란도 테라노바가 자동차 부문 1위로 나섰다. 로마는 "실망스럽긴 하지만 다카르 랠리에선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2연속 우승은 어려워졌지만 레이스 완주를 위해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솜털보다도 가벼움에 한발 나갈수없다

일정한 거리가 역시 필요하다

자신의 자랑스러움에 난감할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타인을 볼때는 장점을 보고 자신을 볼때는 단점을 봐야하는데 항상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잣대를 재는점땜에 당혹스럽다

역시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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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다

지금.

살아있는시간이다

과거에서건너왔고. 현재강건너미래인내일로간다

또 현재 강을 건너고 있다.

오지않는내일로가는지금이있을따름이다

차가운바람속의한점바람만가슴저밑으로밀어넣는다

하늘저위로떠돌기위함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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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 앞에서

내 무덤 앞에서 눈물짓지 말라.
난 그곳에 없다.
난 잠들지 않는다.
난 수천 개의 바람이다.
난 눈 위에서 반짝이는 보석이다.
난 잘 익은 이삭들 위에서 빛나는 햇빛이다.
난 가을에 내리는 비다.
당신이 아침의 고요 속에 눈을 떴을 때
난 원을 그리며 솟구치는 
새들의 가벼운 비상이다.
난 밤에 빛나는 별들이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라.
난 거기에 없다.
난 잠들지 않는다./작가 미상



주위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죽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라며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며
죽음에 대해서도 무지하니까.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죽음이 가까이 왔을 무렵에
지붕이 없는 툭 트인 곳에 있고 싶다
그리고 나는 단식을 하다 죽고 싶다
죽음이 다가오면 음식을 끊고
할 수 있으면 마찬가지로 마시는 것도 끊기를 바란다.
 
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어떤 진통제나 마취제도 필요없다.
나는 되도록 빠르고 조용히 가고 싶다.
회한에 젖거나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으니
오히려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과 위엄, 이해와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함께 나눠 주기 바란다
 
죽음은 무한한 경험의 세계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다
삶의 다른 일들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
 
법이 요구하지 않는 한,
어떤 장의업자나 그밖에 직업으로 시체를 다루는 사람이
이 일에 끼여들어선 안 된다
내가 죽은 뒤 되도록 빨리 친구들이
내 몸에 작업복을 입혀 침낭 속에 넣은 다음
평범한 나무 상자에 뉘기를 바란다.
상자 안이나 위에 어떤 장식도 치장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옷을 입힌 몸은
화장터로 보내어 조용히 화장되기를 바란다.
어떤 장례식도 열려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언제 어떤 식으로던
설교사나 목사, 그밖의 직업 종교인이 주관해서는 안 된다.
 
화장이 끝난 뒤 되도록 빨리 나의 아내가,
만일 아내가 나보다 먼저 가거나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누군가 다른 친구가 재를 거두어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나무 아래 뿌려 주기 바란다.
 
나는 맑은 의식으로 이 모든 요청을 하는 바이며,
이런 요청이 내 뒤에 계속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중되기를 바란다.

- 스콧 니어링(죽기 전에 남긴 유언에서)

 

-찬 공기땜에 서쪽하늘은 그냥스치기에는 아름답다. -

 

좋은 변화와 나쁜 변화를 가르는 기준이 있을까.

어설프나마 이런 프레임을 짜 본다.

즐거움과 기쁨은 다르다.

즐거움에 천착하는 것은 좋지 않은 변화다.

기쁨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변화다.

가령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희희덕거리며 폭탄주를 돌리는 일은 즐겁다.

그러나 다음 날 변기를 붙잡고 기도할 때의 후유증은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밤새 책을 읽는 일은 즐겁지 않다.

그러나 새벽에 마지막 장을 넘길 때의 기쁨은 그 즐겁지 않음의 총량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해서 어떤 일을 할 때 소생은 매번 자문한다. 이 일은 즐거움을 주는 일인가 기쁨을 주는 일인가.

 

그런 식으로 연장해 생각해보면 즐거움은 대체로 아이의 영역이고 기쁨은 대부분 어른의 영역인 것 같다.

물론 궁극의 단계는 즐거움과 기쁨의 대상이 일치하는 것이겠다.

 

이 대목에서 이런 질문 하실 수 있겠다.

신나고 즐겁게 술 마시고 다음 날도 여전히 기쁘다면 어떤 경우입니까.

그건 술이 덜 깬 상태라서 그렇다.

혹은 주머니에 구겨 넣은 카드 영수증을 아직 펼쳐보지 않아서 그렇다.

최근 연구비를 유용하여 유흥주점에서 놀았다는 공공기관 연구원들의 기사를 보면 '애들'의 영역, 즐거움의 영역을 졸업하는 것이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남정욱/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난 수행자는

먹고 입는 것에 탐착하지 않는다

 

열반이란 비어있음이요, 자취가 없는 것

해탈자의 행로여,

허공을 나는 새가 날갯짓의 자국을 남기지 않듯

그 가는 길에도 자취가 없네

 

함께한 의미가 퇴색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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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의 비극 - 성장없는 사랑에 매달려 自殺이라는 파국 맞아
어떻게 살 것인가 -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성장하는 삶을 삶아야
최고의 행복은 융합과 일치 - 타인의 존재를 긍정하고 그들 인생을 예찬해야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인문학 대중 강연 프로그램 '인문학 아고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석영중<사진>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가 '톨스토이, 성장을 말하다'란 제목으로 펼친 강연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톨스토이는 평생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는 사상가이자 교육자이기도 했다.

그는 어떻게 쓸 것인가에 관해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해 더 많이 고민했고, 그 고민은 그의 작품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그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문학 속에 답을 하나 마련해 두었는데 그 답은 바로 '성장'이다.

 그는 성장을 "끊임없이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게 인생의 진정한 의미

톨스토이에게 성장이란 일단 나에게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나 자신을 알고, 이해하고, 나 자신과 훌륭한 관계를 맺으면서 더 나은 최선의 나를 만들어 가는 것, 여기에서 성장이 시작된다.

그런데 나라는 것은 네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래서 나와 너의 관계, 나와 타자의 관계 그리고 나와 세계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결국 톨스토이에게 성장이란 나와 나의 관계 그리고 나와 세계와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해 가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성장이 완결된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장은 그 자체가 과정이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이다.

 다시 말하면 변화해 가는 과정,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것들을 그의 대표작인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서 짚어보도록 하겠다.

1877년 출판된 이 소설은 우리에게 연애 소설 혹은 불륜 소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안나가 아니라 톨스토이가 자기의 분신으로 설정한 레빈이라는 청년이다.

그 청년의 성장 과정이야말로 톨스토이가 우리에게 전달하려 했던 메시지다.

안나 카레니나의 자살은 성장 없는 사랑 때문

아름답고 친절한 안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고위 관료의 젊은 아내다.

그런데 어느 날 모스크바에 사는 오빠가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지르자 오빠 집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간다.

모스크바 역에 내린 안나는 브론스키라는 매우 잘생긴 젊은 청년 장교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안나는 결국 남편과 자식, 사회적인 명성도 버리고 브론스키와 내연의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

 안나는 브론스키가 혹시 자기를 버릴까 봐, 그의 사랑이 식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근거도 없는 질투를 해서 브론스키를 힘들게 하고, 불안에 떨고 나중에는 노이로제 증상까지 보이다가 결국은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만다.

안나의 오빠 스티바에게는 레빈이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스티바의 처제인 키티에게 청혼을 한다. 그런데 키티는 브론스키에게 마음이 가 있었기에 거절한다.

 브론스키가 안나와 내연 관계로 들어가자 키티는 절망한 나머지 병에 걸린다. 독일 온천에 가서 회복한 뒤 러시아로 돌아온 키티는 다시 레빈의 청혼을 받자 수락하고 결혼을 해서 이상적인 삶을 향해 나아간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처음부터 발전의 여지가 없는 사랑이다.

톨스토이에게 욕구 충족에서 출발한 사랑은 더 이상의 성장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나와 브론스키는 변함없는 사랑에만 매달려 있다.

 이 사랑은 변화가 없다. 안나는 브론스키와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의 사랑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못 얻을 때는 브론스키를 증오하게 되고, 브론스키는 안나가 자기한테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그 안나가 짐스러워지고 그러다 보니 증오하게 된다.

결국 두 남녀는 겉으로는 사랑한다고 얘기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깊은 증오를 숨긴 상태가 지속된다.

안나의 자살은 증오에서 오는 자기 학대였다.

이 두 사람의 사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성장이 없다는 것, 다시 말하면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안나는 변함없는 사랑을 원하는데, 그것은 순리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불행해지고 결국 파국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얻는 최고의 행복은 사람들과의 융합과 일치
반면 레빈과 키티는 성장하는 삶을 산다. 둘은 결혼한 처음에는 상당히 많이 괴로워한다.

의심도 하고, 질투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국에 가서는 소통하고, 이상적인 가정, 공감하는 가정 그리고 기쁨이 있는 가정을 향해서 나아가게 된다.

레빈의 성장 단계는 세 가지다.

 

우선은 몰입이다. 그리고 소통을 하고, 그다음에는 죽음을 기억한다.

 

이 세 가지는 강의 초반에 말했던 나와 나의 관계, 나와 세계와의 관계, 변화에 대한 이해로 바꿔 말할 수 있다.

몰입이란 자기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레빈은 소설 중 풀베기 장면에서 이것을 체험한다. 지주인 레빈은 어느 날 직접 풀베기를 하기로 작정한다. 진심으로 농부들과 함께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풀베기 과정에서 그는 자아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게 된다.

'레빈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다.

만일 누군가가 그에게 몇 시간 동안이나 베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30분쯤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풀베기에 몰입하면 할수록 자아가 해방되는 경험을 한다.

'그가 하는 일에는 지금 그에게 커다란 기쁨을 가져다주는 변화가 일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은 자기가 하는 일을 잊어버렸다. 일이 쉬워졌다.' 일종의 무아지경에 빠진 것이다.

 '낫이 저절로 풀을 베었다. 그것은 행복한 순간이었다.

 레빈은 오랫동안 베어 나감에 따라 더욱더 무아지경의 순간을 느끼게 되었다.'

레빈이 자아에서 해방되고 자기의 의식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그는 비로소 외부, 타자, 세계와 교감을 할 수가 있었다. '레빈은 농부들에게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주인에 대한 어려움은 이미 오래전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레빈은 영감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잔뜩 흥미를 느끼며 그의 집안일에 대한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형보다 영감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톨스토이는 소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는 다른 저서 '인생의 길'에서 "이승에서 인간이 얻는 최고의 행복은 사람들과의 융합과 일치"라고 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공감이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고, 그들의 인생을 예찬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톨스토이와 일맥상통한다.

 공감의 순간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경험 가운데 가장 밀도 높은 생생한 경험이다.

죽음을 기억하면 삶은 풍요로워진다

톨스토이는 죽음의 체험이 참으로 많은 사람이었다.

 세 살 때 어머니, 열 살 때는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리고 아주 좋아하던 형도 35세 때 떠나갔다.

그 자신도 58세 때 마차에 치여 사망 직전까지 간 경험이 있었다.

 그는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죽음의 공포를 물리치고자 철학과 종교와 사상을 공부했다.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레빈 역시 죽음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한다.

소설 끝에 아이를 낳고 모든 것이 정말 좋아지는 무렵에 그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절망한다.

 

 '그는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의 앞길에는 고뇌와 죽음과 망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했다.'

이 작품을 쓴 후에도 죽음에 대해 골몰하던 톨스토이가 실제 삶에서 발견한 해답은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만일 반드시 죽을 거라는 걸 기억한다면 지금 이 현재가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죽음을 기억하게 되면 현재가 놀랄 만큼 풍요로워진다.

순간순간이 선물처럼 느껴지고 그 순간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된다.

우리가 죽음을 기억하고, 변화를 받아들이고, 시간과 함께 더불어 살면 시간은 모든 지나간 상처를 치유해 주는 치유의 힘이자 신의 선물이 된다.

인생의 뒤안길에는 상처도 있고 슬픔도 있고 고뇌도 있다.

 이루어지지 않는 욕망, 배신, 좌절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결국은 흘러가며, 어느 때인가는 시간에 의해 치유된다.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인간은 성장하는 것이다.

레빈은 소설의 끝에서 이것을 이해했다. '나의 생활 전체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순간순간이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다

유년기 과도한 TV 시청은 毒
유산소 운동, 기억 용량 키워



기억력 저하는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의 하나다.
30대 중반부터 서서히 뇌세포가 줄어들기 시작,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력을 주관하는 뇌 부위의 기능이 떨어진다. 하지만 기억을 담당하는 측두엽·전두엽을 활성화시키면 세포 수가 줄더라도 기억력은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
한양대병원 신경과 김희진 교수는 "뇌 건강에 좋은 음식을 적정량 먹고, 충분히 자고, 사회적 활동을 오래 하면 기억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기억력 강화에 좋은 생활 속 실천법을 소개한다.

 

 


▲ 30대부터 뇌세포 수가 줄어들기 시작, 50대부터는 전반적인 뇌 기능이 떨어져 건망증 증세가 나타난다. 의료진이 뇌 MRI(자기공명영상) 사진을 판독하는 장면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렘수면 취해야 정보 저장 잘 돼

하루 동안 받아들인 정보를 뇌에 잘 저장하려면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 총 수면량의 20~25%를 차지하는 렘수면 중에는 세타파라는 뇌파가 흐르는데, 세타파는 정보가 뇌에 오랫동안 저장될 수 있도록 돕는다.
김희진 교수는 "렘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고 말했다.
그런데 렘수면량은 총 수면량에 비례하기 때문에, 잠을 적게 자면 렘수면 시간도 줄어든다. 따라서 한 번 잠들면 중간에 깨지 않고 오랫동안 잘 수 있도록 자기 전에 반신욕을 하거나, 적당한 운동을 하는 습관을 갖는 게 좋다.

◇유산소 운동 하면 해마 크기 커져

미국 일리노이어바나샴페인대 연구팀이 노인 6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근력운동과 걷기 운동을 1년간 시켰다. 그 결과, 근력운동을 한 그룹의 해마 크기는 1% 작아졌지만, 걷기 그룹의 해마 크기는 2% 커졌다고 한다.
유산소 운동이 기억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걸 보여준다.
김희진 교수는 "유산소 운동을 하면 산소와 영양분이 뇌로 잘 공급된다"며 "1주일에 세 차례, 매번 한 시간 정도 걷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요가나 명상은 필요 없는 자극에는 뇌가 반응하지 않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에만 집중해서 기억이 잘 되도록 도와준다.

◇적극적인 감정 표현도 중요

특정 자극을 받았을 때 느낀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면 나중에 그 사건을 기억하기 쉽다.
영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57명을 대상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를 보게 한 뒤, 감정을 숨겼던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의 기억력을 비교했다.
그 결과, 슬픈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재미있는 장면에서 웃는 등 느낀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던 그룹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은 그룹에 비해 영화 내용을 더 잘 기억했다고 한다.
정보를 저장하고 감정을 느끼게 하는 뇌 부위(해마)가 같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기웅 교수는 "감정 표현을 제대로 안 하면 우울감을 느끼는데, 우울감은 기억력 저하의 주요 원인"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손 많이 움직여 전두엽 자극해야

손을 많이 쓰면 전두엽이 자극돼 뇌에 저장된 정보를 잘 떠올릴 수 있다.
효과를 높이려면 같은 동작을 반복하기 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손을 움직이는 게 좋다.
오른손잡이라면 왼손으로 글씨를 써보고, 메모는 컴퓨터 대신 종이에 적는 식이다.
큐브 맞추기, 십자 낱말 풀이, 스도쿠 등 머리를 쓰면서 손을 움직여야 하는 놀이도 도움이 된다.
김기웅 교수는 "스마트폰도 손을 쓰기는 하지만, 단순 작업에 가깝기 때문에 기억력 강화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며 "다만,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쪽 손을 사용하면 어느 정도 뇌를 자극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렘수면
잠의 5단계 중 마지막 단계로, 몸은 자고 있지만 뇌는 일을 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뇌를 위한 잠’이라고 불릴 정도로 습득한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잊고 산다

딱히 방법이 없다

문득 기억이 스물 스물 기어올라 우울하게도 한다

딱히 방법이 없다

아마도 잊지 못하고 어느 곳에 묻혀둔것들이 간혹은 한자리를 차지하는듯

또 아래칸으로 자리를 바꿀뿐인것이다

아래

칸들을 바꾸면서 힘든 호흡을 조정할 뿐이다

오늘이 그런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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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해선 안 된다

인내하며 정진하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쭉 과정이 있을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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