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과 웰다잉은 반대 개념 아닌 삶의 한 묶음

 

중앙일보 편집국장논설고문을 지낸 최철주씨는 현역 은퇴 후 웰다잉을 바로 알기 위해 미국·일본 등 해외까지 나가 말기 환자 30여 명의 사연을 들었다.

 

웰빙(well-being)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넘치는 사회에서 내놓고 얘기하기도 꺼리는 웰다잉(well-dying)에 천착하는 이가 있다.

 중앙일보 편집국장·논설고문을 지낸 원로 언론인 최철주(72)씨다.

현재는 호스피스와 웰다잉 강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웰빙과 웰다잉에 대해 “대척점에 있는 게 아니라 웰빙 안에 웰다잉이 존재한다”며 “몇 년 전 딸과 아내를 잇따라 암으로 잃은 것을 계기로 웰다잉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2004년 자궁암 환자이던 딸은 말기 상태에 들어가면서 수술을 마다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것도 완강히 거부해 가족들을 자주 울렸다.

딸은 메모지에 “더 치료할 방법도 없는 상태에서 중환자실에 가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고통이나 마찬가지”라고 적었다.

당시 32세이던 딸은 직장을 그만두고 아기를 기다리는 평범한 주부였다.

이런 딸이 너무 일찍 죽음을 맞게 된 상황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딸은 아빠에게 호스피스 아카데미 교육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웰다잉 강사 교육에 50대 여성 몰려 그가 6개월 과정인 호스피스 교육을 받던 중 딸은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에도 그는 호스피스 교육에 참석했다. 죽음 교육을 잘 받겠다는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집사람은 슬픔을 이겨내지 못했고, 그게 독이 됐다. 딸이 숨진 지 4년 뒤 아내도 암에 걸려 모녀 관계는 참 특별하다고 느꼈다.” 그의 눈이 촉촉해졌다.

 부인은 항암제 치료를 거부하고 호스피스 센터를 나와 8개월간 집에서 머물다 임종했다.

 

그는 요즘 말기 환자들이 편안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웰다잉 강사로 활동 중이다. 웰다잉 강사 양성을 위한 교육에도 적극적이다.

보통 10주 동안 진행되는 강좌인데 그는 이 중 한 강좌를 맡는다. 수강생은 80명 정도. 큰 일을 치른 뒤 삶에 대한 회의를 느낀 여성 수강생이 많단다.

50대 이후 여성이 수강생의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했다.

 

그의 부인은 웰다잉 전도사가 되려는 남편과 함께 다른 나라 호스피스 병동을 방문했다. 투병 중에도 남편이 웰다잉 강사로 나가는 일을 적극 권하기도 했다가 어느 때는 씁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병이 심해질수록 감정의 기복이 커졌다.

 

웰다잉 강사에게도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선뜻 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답을 구하기 위해 그는 아내와 함께 미국·일본 등의 호스피스 병동을 방문하고 죽음을 앞둔 30여 명의 말기 환자를 만났다. 현역에서 은퇴한 원로기자가 다시 취재수첩을 들고 ‘좋은 죽음’과 ‘그렇지 못한 죽음’의 차이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 결과물이 2008년 출간된 『해피엔딩-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란 책이다.

 

부인이 딸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도 미국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많은 환자를 보고 나서였다. 그 후 부인은 “딸이 편안하게 갔다. 그것도 제 복이지”라고 자주 중얼거렸다.

 

연명 치료 거부한 소설가 최인호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그의 취재에 순순히 응해줬을까.

 

“한국에선 힘들었다. 열에 여덟·아홉 사람은 자신의 말년을 남에게 드러내길 꺼렸다. 기자나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어 저널리스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말기 환자들은 달랐다.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담소하고 죽음을 평화로운 상태에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질문에도 잘 답변해줬다.”

 

그는 웰다잉을 실천한 저명인사로 고(故) 최종현 SK 회장을 먼저 꼽았다.

 

“죽음을 앞둔 최 회장을 직접 만난 건 아니다. 현역 기자 시절부터 최 회장의 죽음에 대해선 관심이 많았다.

돈·명예·권력을 모두 가졌던 최 회장이 대학병원에서 치료 받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 6개월 동안 통증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난 이유가 궁금해서였다.

당시 나는 중앙일보 도쿄총국장이었는데 일본 기자들이 오히려 최 회장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게 취재했다.

 나중에 최 회장의 동반자였던 SK텔레콤 손길승 명예회장으로부터 죽음의 과정을 전해 들었다.

손 회장에 따르면 최 회장은 폐암 수술 뒤 암이 재발하자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거부했다.

통증이 심해지면 통증 완화제를 맞으면서 호흡 훈련을 하며 자기 마음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새 항암제를 써보자는 주변의 권유도 뿌리치고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최 회장이 생을 마감한 당시(1998년)만 해도 토장(土葬)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 회장은 자신을 화장해 자연에 뿌려줄 것을 당부했다.

 그의 유언은 우리나라의 화장 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유명 작곡자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인 조념씨의 죽음도 그에겐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경기도 포천의 한 호스피스 센터에서 조 선생을 만난 것은 2008년 그가 숨지기 닷새 전이었다.

그는 지인들이 마지막 눈도장을 찍기 위해 병원을 찾는 것을 피곤해하고 나중엔 다 거부했다.

 그러던 분이 내 책을 보고 공감했다면서 나를 위해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를 직접 연주해줬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그는 소설가 최인호씨도 임종 전에 만나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여러 번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나를 만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최 작가의 친구로부터 ‘그가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으며 계속 글을 쓰고 싶지만 죽음이란 운명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는 연명 치료를 거부했다.”

 

그럼 죽음을 앞둔 가족이나 지인들에겐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그는 자연스러운 대화를 권한다.

 

“병문안 와서 자신도 모르게 살아 있는 우월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환자에게 위로는커녕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천당 가실 거다’ ‘극락왕생 하실 거다’ 같은 말은 환자의 상처를 덧나게 한다.

 하느님·성경·화엄경·금강경 등 종교와 관련된 말도 너무 많이 하는 건 피하는 것이 좋다.

 신앙을 지닌 환자들도 종교 얘기를 하는 것은 싫어했다.

 ‘우리 지난 봄에 놀러갔을 때가 생각난다. 그런 행복한 시절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약간 괜찮아지면 차나 한 잔 마시자’ ‘커피향 좋지’ ‘장미가 참 예쁘지’와 같이 평소처럼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된다.

 시인 이해인 수녀에게 들은 얘기가 인상 깊다.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김수환 추기경이 ‘잠깐 오라’고 했단다.

 자신을 종교적으로 위로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김 추기경은 종교 언어 하나 쓰지 않고 ‘이해인 수녀,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 하며 인간적인 말로 자신을 위로했다고 했다.

 김 추기경이 가난하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터득한 위로의 말일 것으로 이해인 수녀는 말했다.”

 

미국에선 초등학교 때부터 죽음 교육 시작

질병으로 여명이 제한돼 있는 이들은 어떻게 삶을 마감하는 것이 웰다잉일까.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통스럽다.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명도 연장될 수 있다”고 답했다.

평온한 죽음, 즉 평온사(平穩死)에서 답을 찾자는 것이다.

 

“웰다잉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을 맞는 것이다.

 생존 가능한 시간을 주치의에게 미리 알려달라고 요청한 뒤 남은 시간에 마무리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떠나는 것이 웰다잉의 좋은 예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서처럼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을 실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말기 환자 중엔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멀리는 못 가지만 일본·중국 등 가까운 나라를 여행한다.

이들은 진통제를 처방받아 통증이 심해지는 상황에 대비한다. 배낭을 메고 가족과 함께 국내 여행을 하거나 서예 등 취미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환자에게 여명을 말해주지 않는 의사가 꽤 많은 게 현실이다. 나중에 있을지 모를 환자나 보호자들의 항의를 꺼려서라고 한다.

 

“의료진이 예상하는 이상으로 오래 사는 환자들도 꽤 많다.

나는 주치의가 여명을 말해주지 않으면 담당 레지던트에게 물어볼 것을 권한다.

 의사가 죽음을 모르고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난센스다. 의사라면 환자의 치료(cure)와 관리(care)를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국내 의대에선 죽음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다.

 지난해 가을부터 울산대 의대가 전국 최초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서구에선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 그는 미국의 예를 들면서 초등학교 때 그런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선 초등 교사가 테이블 위에 화분을 놓고 삶과 죽음의 개념을 가르친다. 꽃은 열흘이면 시드는데 그게 꽃의 인생이란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가족처럼 대하는 애완견도 10∼20년이면 떠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면서도 그는 “웰빙의 삶을 살려면 웰다잉을 알아야 한다”

오랫만이다.

새벽에 나왔다.

역시 자전거랑 가을속으로  쭉 떠나보고 싶었다.

곳곳에 꿈꾸던 풍경속으로

그리고 그 모든것에서 빠져 나왔다.

바람속으로 향기속으로 결국은 내속으로 그렇게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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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른 사람 알지 못하고 모두가 다 혼자다.

<헤르만 헤세 - 안개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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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엄마 샬롯 키틀리(영국)씨가 지난 16일 세상을 떠났다(depart this life). 36세.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be diagnosed with stage four bowel cancer). 간과 폐로 전이됐다(spread to her liver and lungs). 대장과 간의 종양을 제거하기(remove tumors from her bowel and liver) 위해 두 번 수술을 받았다.

25차례의 방사선 치료, 39번의 끔찍한 화학요법 치료(25 rounds of radiotherapy and 39 bouts of gruelling chemotherapy)도 견뎌냈지만, 끝내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블로그 내용.

"살고 싶은 나날이 저리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become grumpy with my husband) 늙어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 소리 지르는(shout at my children to wake up, hurry up and clean their teeth)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살고 싶어서, 해보라는 온갖 치료 다 받아봤어요. 기본적 의학 요법은 물론(not to mention the standard medical therapies), 기름에 절인 치즈도 먹어보고 쓰디쓴 즙도 마셔봤습니다. 침도 맞았지요(get acupuncture).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귀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feel like a waste of precious time). 장례식 문제를 미리 처리해놓고 나니(sort out my funeral in advance) 매일 아침 일어나 내 새끼들 껴안아주고 뽀뽀해줄 수 있다는(have a cuddle and kiss my babies) 게 새삼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얼마 후 나는 그이의 곁에서 잠을 깨는(awake next to him) 기쁨을 잃게 될 것이고, 그이는 무심코 커피잔 두 개를 꺼냈다가 커피는 한 잔만 타도 된다는 사실에 슬퍼하겠지요. 딸 아이 머리 땋아줘야(plait her hair) 하는데…, 아들 녀석 잃어 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는 저만 아는데 그건 누가 찾아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be given six months to live) 22개월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로 얻은 덕에 아들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 주는(walk my son for his first day at school) 기쁨을 품고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녀석의 첫 번째 흔들거리던 이빨(his first wobbly tooth)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보너스 1년 덕분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중년의 복부 비만(middle-age spread)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expanding waistline), 그거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greying hair)이요? 그거 한번 뽑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꽉 붙드세요(keep a tight grip on your life with both hands).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Live to the point of tears.'(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눈물이 나도록 살아라.'


 

높은 수행자는 아무 것도 모으지 않는다

탁발로 살아가도 그 공성(空性)을 꿰뚫어보네

열반이란 비어있음이요,

자취가 없는 것 해탈자의 행로여,

허공을 나는 새가 날갯짓의 자국을 남기지 않듯

그 가는 길에도 자취가 없네

 

첫 발자국조차 디디지 못하고 엉거주춤 상태유지

다시 시작하자. 결국 아무것에도 다다르지 못함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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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의 십자가 지고 갈 사제단의 40돌

“이 시대의 노란 리본 평생 달고 살 수밖에요”


‘교회의 사명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것. 빈자 약자들을 위해 교회 밖으로 나가라. 교회는 상처받은 약자들을 돕는 야전병원이 되어야 한다.’ 이런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삶에서 실천하는 종교인들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을 빼고 말할 수 있을까.

편한 길을 두고 굳이 고난을 자초하며 약자들 곁을 지켜온 사제단이 창립 40돌을 맞았다. 사제단은 22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40돌 감사 미사를 올리고, 오후 1시엔 같은 장소에서 ‘사제단 40년 평가와 전망’ 심포지엄을 연다. 명동성당은 1976년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철폐를 요구하며 김대중·문익환·윤보선·함석헌 등이 ‘3·1 구국선언’을 발표한 곳이자, 1987년 박종철씨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건을 폭로해 6월 항쟁의 불을 지핀 민주화의 성지다.

성서에서 40년은 이스라엘 족속들이 애굽(이집트)의 노예상태에서 도망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보낸 세월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가나안 땅으로 향하기보다는 거친 광야로 나가고 있다. 왜일까. 40돌 행사 준비위원장인 김인국 신부(충북 옥천성당 주임·사진)에게 그 이유를 들었다.


                                                                            박정희 유신정권 저항하며 탄생 
                                                                           그 딸이 40년 민주화 여정 되돌려 
                                                                           사제단도 다시 그 자세로 가야 돼 
                                                                             22일 ‘40년 평가·전망’ 심포지엄
                                                                              ‘정치·종북 사제’로 매도 당하지만 
                                                                             빈자·약자 돕는 것이 교회의 사명 
                                                                              침묵은 결국 강자의 편을 드는 것 
                                                                            교회쇄신은 미룰 수 없는 당면과제


“4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권에 저항하며 사제단이 탄생했다.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40년 동안 국민들이 피땀으로 연 민주화 여정을 참혹한 상태로 역주행해버렸다. 사회 전반이 유신독재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 그러니 사제단도 다시 그때의 자세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익과 보수신문들은 사제들의 현실참여는 1970~80년대엔 저항하는 게 정당성이 있었지만, 민주화가 이뤄진 지금은 정당성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왜 사회 갈등만 부추기느냐”며 “사제단이 역할이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김 신부는 당시에도 독재자를 옹호하고 민주화 인사들을 음해하던 그들의 공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더구나 “교회 밖의 일에 그렇게 신경 쓰는 게 사제의 할 일이냐”는 논박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왜 ‘교회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는가. ‘교회 밖으로 나가 빈자와 약자를 돕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는 초기 100년간은 박해시대 순교로 인해 산으로 피해 도망다니며 기진맥진해 미처 교회 밖을 돌볼 수 없었다. 그 이후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조선교구를 이끈 뮈텔 주교와 김수환 추기경, 두 개의 모델이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고 있다. 뮈텔 주교는 한민족을 등진 채 한국 교회를 지키는 데만 주력했다. 반면 김수환 추기경은 민주화 여정에 동참하고 인권 피해자들을 껴안으며 세상을 살리기 위해 애썼다. 교황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떤 모델을 따라야 할 것인지는 명확하다. 사제들은 교회 자신만을 위해 파견된 존재가 아님은 분명하다.”

40살 이후에도 사회 참여를 중단하거나 수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김 신부의 주장이다. 오히려 사제에서 평신도로, 사회적 이슈에서 세상 전반으로 ‘참여’가 확산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달 방한한 교황께서 평신도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선사업도 좋지만, 인간 성장에 기여하라’는 주문을 했다. 교황은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했듯이, 자본에 의해 정리해고를 당하고 폐기물로 취급되는 인간들이 인간으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구조적 개선을 요청한 것이다.”

사제단은 세상 밖으로 나올수록 ‘갈등과 분열의 주범’으로 공격받을 게 뻔하다. 최근엔 우익들과 연계된 교회 내 단체들까지 등장해 사제단을 ‘정치 사제와 종북 사제’로 매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교회 내에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로 분열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주교들이 그런 분열이 두려워 눈치를 보며 침묵하는 건 교회를 기둥부터 썩게 만드는 것이다. 눈치를 보는 대상이 누구냐. 약자들은 아니다. 결국 기득권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약자들은 이의제기도 하지않는다. 침묵은 결국 강자의 편을 드는 것이다. 그러면 빈자와 약자를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할 교회가 복음의 기둥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눈치를 살피기보다는 빈자와 약자를 돕다가 시끄러워질수록 오히려 복음다운 것이다. 그게 교회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 때문에 ‘교회 쇄신’은 더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라는 게 김 신부의 생각이다. 교황의 방한 성과를 일회성으로 덮어버리지 않고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사목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도 교회 상층부부터 쇄신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본당 예산의 10%는 무조건 사회복지기금으로 쓰고 그중 30%는 정의평화기금으로 쓰는 인천교구처럼 사제들이 예산 사용하는 것부터 쇄신하는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쇄신은 자기다움의 회복이다. ‘보잘것없는 사람’ 보기를 ‘주님’ 보듯이 하는 특유의 시력을 되찾는 것이다. 교회가 모든 이를 비춰주고 살려주고 키워주는 태양이라면 가장 우선적으로 비춰야 할 이들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김 신부는 “그래서 사제단은 이 시대의 노란 리본을 평생 달고 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순교당한 복자 124위처럼 박해받고 고난당하는 것은 세상의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복음의 기쁨’이기에, ‘40돌’ 이후에도 고난의 십자가를 계속 지고 가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갈 수 있는 끝이 여기까지인 게 시시해.

소라게처럼, 소라게처럼. 우리는 각자 경치 좋은 곳에 홀로 서 있는 전망대처럼 높고 외롭지만 그게 다지.

<김소연 - 오키나와, 튀니지, 프랑시스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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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싱글족 47% 스웨덴 행복도 세계 5위

‘복지 천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은 1인 가구 비율이 전체의 47%에 달한다. 국민 두 명 중 한 명은 혼자 산다는 얘기다. 수도인 스톡홀름은 이 비율이 무려 60%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에서는 ‘고독사(孤獨死)’ 같은 사회적 문제를 찾아보기 어렵다.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해체됐음에도 ‘살기 좋은 나라’에 꼽힌다. 실제로 지난해 유엔이 전 세계 156개국을 대상으로 국민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2013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은 덴마크·노르웨이 등에 이어 5위였다.

 비결은 다양한 복지제도와 사회안전장치다. 특히 ‘공동주택정책’은 1인 가구를 위한 핵심 지원책이다. 집합주택 거주자들이 개인 원룸을 제외한 공동주방과 육아센터 등 나머지 시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거주자들은 각자의 경험과 정보를 교류하며 공동체를 꾸려나간다. 이 때문에 1인 가구라 해도 고립될 일이 없다.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은 청년층과 노년층의 안정된 주거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에서 지원하는 주택보조금은 이 나라가 1인 가구의 천국이 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일본은 1인 가구 맞춤형 치안·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본 도쿄가스의 경우 독거노인의 가스 사용 여부를 친지들에게 전화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프랑스에는 ‘콜로카시옹(colocation)’이란 제도가 있다. ‘두 세대 함께 살기’ 등 협회를 통해 독거노인이나 노인 부부가 젊은 학생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다. 대기를 이루는 가스 물질의 흐름을 일컫는 말이다.

바람은 일반적으로 공간적 규모, 속도, 원인, 발생지역, 영향 등에 따라 분류한다.

대규모 바람(global winds)으로는 대기 순환류(atmospheric circulation cell)에 존재하는 바람이 있다.

또 제트기류(jet streams)라 불리는 상층대기의 빠른 집적된 공기의 흐름이 있다.

종관 규모(synoptic-scale winds)에서는 중위도 지역의 표층 공기 덩어리의 압력차에 의하여 발생하는 바람과 해륙풍과 같이 지형적 형태의 결과로 나타나는 바람이 있다.

중간규모(mesoscale winds)의 바람으로는 소나기 전선(gust front)와 같이 지역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바람이 있다.

가장 작은 규모의 미소 바람(microscale winds)으로 10~100m 규모로 발생하여 예측할 수 없는 회오리바람이나 순간돌풍(microbursts)와 같은 바람이 있다.

바람을 구동시키거나 영향을 미치는 힘으로는 기압경도력(pressure gradient force), 전향력(Coriolis force), 부력(bouyancy force), 마찰력이 있다.

만일 두 공기 덩어리 사이의 압력의 차이가 존재하면 고기압 영역에서 저기압 영역으로 공기가 흐르게 된다.

행성은 회전함으로 적도에서 멀고, 지표면에서 충분히 높은 영역에서 흐르는 공기는 전향력의 영향을 우선적으로 받게 된다.

대규모의 지구 규모의 바람(large scale global winds)에는 적도 지역과 극지역의 차별 가열에 의한 힘과 행성의 자전에 의한 힘이 가장 큰 구동력(driving force)로 작용한다.

바람은 다양한 풍화 작용을 거쳐 지형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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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만들어진 우울증>은 자연스런 감정을 질병으로 만드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수줍음 같은 소극적 기질을 우울증으로 몰아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미국의 제약, 의료 산업 구조를 파헤친다. 하지만 우울증에 관한 무지가 심각한 우리 사회에서는 섬세한 읽기가 필요하다. 우울증은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아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들은 다른 약은 남용하면서 유독 신경정신과 처방전만은 “의지로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지는 적재적소의 미덕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 의지는 재앙이다. 지나친 의지, “하면 된다. 안 되면 될 때까지”는 목표가 무엇이든 바람직하지 않다. ‘열심’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많아서일까. 내게 ‘열심’은 치열하거나 성실하다는 의미보다 완장 차고 설친다는 인상이 강하다. 환경 파괴는 덤이다.

 

이 책은 수줍음이 어떻게 병이 되었나(원제)를 추적한다. ‘밝고 긍정적인 인상’처럼 무조건 긍정되는 말도 드물다.

 자본주의에 적합한 인간형과 기분(mood)이 있다. 체제는 적응형 인간을 정상으로 본다. 활기는 맹목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된 반면 우울함, 슬픔, 무기력은 부적응 ‘증상’이 되었다. 단조형 감정은 자본의 적이다. 자본은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없다. 글자 그대로 경기는 ‘부양(浮揚)’하는 것이다.

부끄러움, 겸손함, 신중함의 미덕은 후퇴했다. 이 책은 성공을 위해 확신에 차 있으며 사교성이 지나치게 좋은 인간 유형을 찬양하는 시대를 분석한다. 수줍음이 아니라 다행증(多幸症)이 문제라는 것이다. 울퉁불퉁한 사람, 내향적인 사람, 염세주의자, 비관주의자, 소심한 사람이 없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일까.(7장)

 

즐거움 집착 현상은 사색이나 고뇌보다 건강, 출세, 스펙, 힐링에 집중한다. 그렇지 않거나 그런 가치에 관심 없는 사람은 낙오자 취급한다. 뻔뻔 당당형, 자기도취, 근거 없는 자신감에 넘치는 리더들이 많다. 막히는 도로에서, 아니 사회 도처에서 “목소리 크면 이긴다”는 ‘활기’가 넘친다.

 

세월호는 매일 충격의 강도를 갱신하고 있지만 ‘세월호 피로감’은 절정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문제 해결을 방치하고 일을 안 하는 정치권과 관료들이 국민에게 피로감을 준다는 뜻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이 표현으로 비판받아야 할 사람들이, 이 말로 피해 집단이 행복을 방해한다고 불평하고 있다. 당신들 때문에 피곤하다고.

피로감의 출처는 어디인가. 지난 4월16일 이후 사태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누가 할 말을 누가 하고 있는가’라는 피로감이다. 적반하장이 분노에서 가치관의 혼란과 자기 검열을 거쳐, 집단 우울증을 낳았다. 그들이 말하는 피로의 내용을 알고 싶다. 지겨움? 지겨운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무엇이 이토록 정부 여당을 공포에 떨게 하는가 궁금증만 깊어갈 뿐이다. 유병언씨의 죽음(?)을 둘러싼 항간의 다양한 분석들이 대표적인 예다.

 

피로감 언설은 어두운 일은 잊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처럼 얘기한다.

 신문이나 방송도 “따뜻한 소식, 즐거운 뉴스가 많은 세상을 희망해봅니다”는 식의 언급을 자주 하는데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소식은 없다. 뉴스는 정치보다 당파적이다. 사람마다 이해관계, 입장, 위치에 따라 희비가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 괴로운 사실이 어떤 사람에게는 사태의 진전일 수 있다.

어떤 이에겐 평화가 어떤 이에겐 부정의일 수 있다.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건의 효과는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무엇에 대해 걱정하는가”보다 “이 걱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효과적이다.(257쪽)

 

나는 한국 사회가 싫어하는 인간형은 진보나 여성주의 이런 쪽(?)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문제 제기, 정확한 질문이 많은 사람도 공격적이라고 기피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모나거나 어두운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사유는 인간 본성(호모 사피엔스!), 세월호는 영원히 생각할 문제다.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일상이다. 행복 강박을 버리고 비극을 허락하라.

 불안 없는 영혼이 더 위험하다.(319쪽)

 

정희진 여성학 강사

그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
아무도 본 이는 없지만 나뭇잎 가만히 흔들면서 바람은 거기를 지나간다.
그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 아무도 본 이는 없지만 나뭇잎 머리를 숙이면서 바람은 거기를 지나간다.
<크리스티나 로제티 - 바람>

 

쭉 뛰고 또 뛰고 바람을 앉고 현실에서 빠져나오면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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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위대한 희생이나 의무가 아니라,

미소와 위로의 말 한 마디가 우리 삶을 아름다움으로 채우네.

<메리 R 하트먼 -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언제인가. 기다리면 그때가 온다고. 성장미숙으로 있었다는 이유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 지금이 전부이다. 머물러있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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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처세술’ 누구한테 배웠나       이봉수 시민편집인·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유아독존, 아전인수, 교언영색, 당동벌이, 객반위주….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듣고 ‘도대체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고심하며 떠올려본 사자성어들이다.

유아독존(唯我獨尊). 세상에서 자기만 존귀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다. 왕조 시대 군왕의 태도인데, 민주주의 시대 지도자라면 가져서는 안될 기질이다. 잘난 체하기로 제일 유명한 왕은 루이14세쯤 될 것이다. ‘짐은 곧 국가’라고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비슷한 말을 했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설훈 의원의 말투에 개인적으로 기분이 나빴을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자신을 국민과 동일시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것을 알고 기분 나빠진 국민도 있을 것이다.

같은 군 출신이지만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은 결이 꽤 달랐다. 전 대통령은 자기를 많이 닮은 탤런트조차 출연을 금했지만, 노 대통령은 “나를 코미디 대상으로 삼아도 좋다”고 말했다. 권위주의에 길들여진 언론은 그런 대통령을 ‘물태우’라고 조롱했다. 고졸인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언론이 아예 대통령 대접을 하지 않았다.

한국 언론의 병리를 드러낸 보도 태도였지만 대통령이 탈권위주의로 나가는 방향은 옳았다. 약간의 금도만 지켜진다면 정치인에 대한 국민과 언론의 풍자는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 우리나라 예전 탈춤도 그랬지만 정치 선진국에서는 신랄한 풍자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때 검찰이 풍자만화나 걸개그림까지 처벌하기 시작하더니 요즘 들어 우리의 풍자문화는 박정희·전두환 시대로 퇴행하는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에는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까지 선거가 끝나면 ‘공복’이 아니라 큰 ‘벼슬’로 여기고 뻣뻣해지는 이들이 많은데, 말 속에서 그런 태도가 배어 나온다. 진해야구장 건립 취소로 16일 달걀 투척 세례를 받은 안상수 창원시장도 발표문에서 “110만 창원시민의 수장에게 테러를 가한 것은 시민을 모독한 행위”라며 시민의 ‘수장’을 자임했다.

아전인수(我田引水). 자기에게만 이롭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함을 이르는 말이다. KBS 여론조사에서도 세월호 재협상과 수사권·기소권 보장이 훨씬 우세했는데 반대 의견만 수렴해 재협상을 걷어차버렸다. 세월호법으로 설치될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는 유가족 요구를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며 5개월간 침묵하더니 “여야의 2차 합의안이 마지막 결단이었다”며 입법권을 침해했다. 삼권분립을 내세우거나 내팽개치는 것이 자신의 유·불리에 달렸다.

박 대통령은 “국회가 국민에 대한 의무를 행하지 못할 경우 그 의무를 반납하고 세비도 돌려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삼권분립 체제에서 헌법 위반 소지가 있는 대통령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행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 입법부의 권능을 무시하는 것은 탄핵감 아닌가? ‘말도 못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면 대통령 하야 발언에는 여권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나? 박정희 대통령이 10월유신 때 국회를 해산한 것도 국회를 시녀로 여긴 사고방식의 연장선에 있었다.

내각책임제라면 총리는 의회를 비판하고 해산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권한은 총리 자신의 퇴진을 전제로 한다. 함께 책임을 지도록 제도를 발전시켜온 것이다. 세비 반납 발언도 아전인수식이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 사학법에 반대해 두 달간 국회에 나오지 않았을 때 세비를 반납했다면 말발이 선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민생법안은커녕 법안 제출 건수와 출석일수가 모두 꼴찌였다.

교언영색(巧言令色).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꾸며서 하는 말과 꾸며서 짓는 낯빛을 일컫는다. 박 대통령은 5월19일 눈물을 흘리면서 세월호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때의 말과 눈물이 교언영색이 아니었다면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눈물이 턱까지 흘러내리면 가려워서라도 닦기 마련인데 그러지 않은 것은 역시 꾸민 행동이었나?


▲ 유아독존, 아전인수, 교언영색, 당동벌이…
우리는 어쩌다 이런 대통령을 ‘모시게’ 됐나

▲ ‘짐은 곧 국민’ 권위에 대한 도전 용납 안해
원칙도 유·불리 따라 변하고 꾸며서 하는 말 수시로 바꿔
보수신문·방송이 부추기면 대립국면 조성해 난국 돌파


 

정부의 교언영색 중 최신판은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올린다는 발표였다. 국민 건강이 그렇게 걱정된다면 정부가 금연운동을 벌이든지 부탄 왕국처럼 아예 흡연을 금지하면 될 일이다. 노무현 정부 때 담뱃값을 500원 올리려 하자 박근혜·최경환 의원은 반대했다. 그때는 국민 건강을 조금만 위하는 수준이어서 반대했나? 서민 부담이 큰 간접세이지만 세수 확보와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세를 올렸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더라면 애연가들이 뒤틀린 심사를 달래기 위해 애꿎은 담배를 또 태우지는 않았을 터이다.

‘민생 타령’을 하며 세월호 국면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전형적인 교언영색이다.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내걸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강화도 알고보니 ‘감언이설’이었지만, ‘민생’은 공약을 지키는 게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다. 서민들의 삶이 총체적으로 붕괴되고 있는데 일부 서비스업과 부동산의 규제를 푸는 걸로 민생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무능 정권의 밑천을 드러낸 것이다. 학교 근처에 호텔을 짓겠다는 관광진흥법과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 등은 ‘민생법안’이 아니라 ‘민폐법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보수신문과 ‘정권방송’이 ‘우리 경제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내자 정부도 맞장구 치며 세월호 정국 탈출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 세월호처럼 갑자기 침몰했나, 한국 경제에 느닷없이 골든타임이 닥친 이유를 모르겠다. 집권하고 1년반도 넘은 때에….

박 대통령의 재래시장 방문은 박정희 대통령 이래로 써먹어온 교언영색의 수법인데도 먹혀 들어가는 건 왜일까? 정치적으로 대립국면이 고조될 때마다 시장에 가는 건 ‘정치와 초연하게 경제만 생각하는 대통령’이란 이미지를 부각시켜 주기 때문이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주범이다. 재래시장을 찾는 것은 사주는 상품값만큼만 민생에 도움이 될 뿐이다. 정치를 통하지 않고 경제를 살릴 방도는 없다. ‘경제’란 말 자체가 경세제민(經世濟民), 곧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 아닌가.

당동벌이(黨同伐異).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한패가 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물리친다는 말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특별법에 ‘순수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담아야 하고 ‘외부 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을 아군과 적군으로 구분하고 대결국면을 조성해 난국에서 빠져나가려는 발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00%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던 ‘국민대통합’ 약속을 완전히 저버리고 절반가량 지지층만 확실히 안고 가겠다는 태도다. 보수신문과 종편방송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다 지상파 방송도 극우인사들을 방송통신위원회와 KBS 이사회 등에 대거 포진시킴으로써 대국민 심리전 준비를 끝낸 상태다. 이름만 남은 ‘공영방송’의 사장과 요직도 친여 인물로 채워졌다.

객반위주(客反爲主). 손님이 도리어 주인 노릇을 한다는 뜻이다. 세월호 유족들도 국민이지만 국민을 돌봐야 할 대통령은 그들이 헌법체계를 흔들고 경제의 발목을 잡는 ‘국가의 공적’이나 되는 것처럼 매도했다. 박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진상규명에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더니 오히려 대못을 박았다.

박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과 처세술이 체득한 것이든, ‘호가호위’하는 참모들의 농단에 따른 것이든, 언론이 부추긴 것이든, 아니면 합작품이든,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정국에 대한 국민 피로도가 점증하고 야당이 지리멸렬한 틈에 승부수를 잘 던졌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성역 없는 진상규명으로 유족들의 한을 풀지 못한다면, 진심으로 서민을 위한 정책들을 내놓지 못한다면, ‘정신적 내전’ 상태라고 불릴 만큼 편가르기가 심한데 그걸 더 부추긴다면, 언론에 의해 일정 부분 ‘만들어진’ 지지율을 믿고 일방적으로 국정을 밀어붙인다면, 박근혜 정권은 임기말에 참담한 ‘일패도지’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그때 가서는 어떤 사자성어를 떠올릴까?

자승자박, 소탐대실, 인과응보, 진퇴유곡…. 그래도 국민을 위해 ‘사필귀정’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악담이 아닌 쓴소리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구름이 전부 하늘을 가렸다.

바람이 시원했다.

때론 바람이 바람의 기온을 한뼘쯤 더 낮추는데 도왔다.

자전거 타기 최적의 날이었다.

역시 가을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지금은 올수 없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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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그런 그림자가 있었다는 현실

다행이다

천만다행이다

 

다름이 전염병에서 함께 추락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함께가 같음의 병폐임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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