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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거리 패션 포토 에세이 <사토리얼리스트>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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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입기 혹은 패션은 단순히 멋을 부리고 사치를 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을 표현하고 남과 다른 개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좋은 수단이다. 굳이 고급 브랜드나 값비싼 명품으로 꾸미지 않아도 자신만의 스타일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
그러려면 자신의 몸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옷 입기에 대해 상상력과 창조성을 발휘해야 한다. 패션을 넘어 예술을 하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몇몇의 천재적인 감각의 소유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형 무명 예술가들인 셈이다. 누구도 매일 아침 예술가가 되어야 하는 이 숙명을 거부할 수 없다.
이렇게 옷 입기도 예술의 한가지인지라 안목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덕목이다. 주로 TV나 잡지를 보고 참고하게 되지만 전문가들이 꾸미고 스튜디오에서 찍고 '뽀샵'으로 매만진 모델들의 패션은 도무지 현실감이 없고 괜한 자괴감만 들기 십상.
이런 일반인들의 마음을 꿰뚫은 이가 이 책 <사토리얼리스트>의 저자 스콧 슈만이다. 느낌 있게 옷을 입고 다니는 보통 사람들의 길거리 패션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사진 블로깅을 예술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www.thesartorialist.com).
이 책은 그가 블로그에 올렸던 사진 가운데 가장 아끼는 사진들과 통찰력 넘치는 글들을 엮어낸 포토 에세이다. 2005년 9월부터 현재까지 뉴욕, 밀라노, 런던, 파리, 모스크바, 피렌체, 스톡홀름, 도쿄 등 패션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도시에서 촬영한 시민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특히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는 내겐 자전거를 타면서 스타일을 내는 평상복 차림의 멋쟁이가 무척 반갑다. 입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멋쟁이들이 출현해 무척 반가웠다. 시각적으로 즐겁고 다채로운 영감까지 전해주는 부담 없이 보기에 더없는 책이다.
자기 스타일이 있는 사람들, 사토리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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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듦에도 패션 감각과 남성적인 카리스마를 간직한 사토리얼리스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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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이 큰 여성들은 종종 패션에서 소외된다고 느낀다.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몸집 큰 여성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패션이라는 게임을 잡지 속 바싹 마른 열여덟 살 소녀가 규정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 본문 가운데'사토리얼리스트(Satorialist)'는 자기만의 개성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저자가 길거리에서 찍은 모델들은 인종, 성별, 국적, 직업, 외모가 각양각색인 일반인들이다. 어떤 브랜드인지, 어디서 구매한 옷인지 설명도 없다. 그저 각각의 사진들이 말한다. 이 인물이 어째서 매력적인지, 무엇이 감각적인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사진이 마음에 드는 까닭, 매력으로 다가오는 까닭을 고민해보는 것만으로도 옷 입기의 감을 키우기에 더없이 좋다. 내일 아침 당장 따라 해보고 싶은 스타일 팁은 독자가 구하는 만큼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인물의 살아있는 표정, 각자가 한껏 자신 있게 취한 포즈, 피사체를 담아내는 애정 넘치는 시선이 담겨있는 사진들은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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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자전거 탄 아가씨들이 많아졌음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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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잡지를 보듯 책장을 천천히 한 장씩 넘겨보았다.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다. 소녀도 있고 노인도 있다. 패션쇼에서 나온 듯한 세련됨도 있고 '이건 어느 별에서 온 패션이지?'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낯선 아름다움도 있다. 숙녀도 있고 신사도 있다. 대머리에 뚱뚱한 남자도 있고, 백발 초로의 노인도 있다. 중간 중간 저자의 통찰이 담긴 칼럼이 섞이면서 마치 갖가지 다양함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밀림 속을 탐험하는 것 같다.
다 헤어진 양복을 타이트하고 맵시 있게 입은 아저씨의 자신감, 자전거를 타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백발의 노인들, 주름 없는 여자보다 섹슈얼리티(Sexuality)를 잃지 않는 여자가 왜 더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노배우의 자연스런 옷차림 등은 패션과 개성이 돈이 많은 이나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런웨이나 스튜디오가 아닌 거리에서 찍은 스트리트 포토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과 자세에서 자연스러움과 삶의 이야기가 묻어 난다. 남녀노소, 각양각색 다양한 멋쟁이들의 사진 속에서 삶의 에너지와 즐거움이 느껴진다. 배가 나오고 머리가 벗겨지는 나이듦에도 패션 감각과 남성적인 카리스마를 간직한 사진들에선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에 쉽게 다음 장으로 넘길 수 없게 된다.
'완벽하면 할수록 때론 완전히 지루한 사진이 된다'는 저자의 신조처럼 자연광 아래에서, 거리에서 특별한 연출 없이도, 조명이나 메이크업 없이도 사진속 사람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타인의 취향 속에서 깨닫는 내 안의 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훌륭한 스타일이란 눈에 띄고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떤 여성의 경우는 그녀의 모순적인 태도, 즉 아무도 보지 않기를 바라 의식적으로 남들과 구별되게 옷을 입는다는 사실이 자기만의 멋지고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었다 - 모순의 스타일, 스톡홀름에서
책장을 넘길수록 '세상에 옷 잘 입는 사람 참 많구나'라고 생각했던 처음과 달리, 내가 저 사람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타인의 옷차림, 타인의 취향을 통해 나를 더 잘 알게 된다. 이것이 저자 스콧 슈만이 독자에게 전해 주는 중요한 깨달음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우리 주변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느긋하고 근사한 남자들을 맘껏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패션은 연예인 혹은 여성들의 고급 취미나 허영, 스타일쯤으로 생각하기 쉬운 한국 문화에서 자기에 맞게 옷을 입은 근사한 남자들을 많이 본다는 건 기분 좋은 경험이다. 특히 중장년 아저씨나 할아버지들은 근사함에 느긋함까지 갖추어, 노화를 끔찍한 적으로 여기는 우리의 '안티 에이징' 문화에 뭔가 생각거리까지 던져준다. 나라마다 사람은 달라도 자전거 타는 모습은 대개 비슷한데 유독 우리나라의 자전거 탄 사람들은 싸이클 선수들마냥 자전거 전용 옷인 저지와 쫄쫄이 바지, 헬멧 등을 갖춰 입는다. 인터넷 자전거 동호회 정모에 나갔다가 기자만 평상복 차림을 하고 있어 당황한 적도 있었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시절을 오래 겪은 후유증으로 얻은 획일적 몰개성, 전체주의 문화에다 군복무의 영향까지 받은 탓에 서로 비슷비슷한 유니폼 복장에 익숙한 것이 우리나라 남성들의 옷 입기다. 한국의 많은 남자들이 이 책을 곁에 두고 패션 팁과 아이디어에 대한 '일용할 양식'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저자의 말마따나 '자기가 누군지 잘 모를 때 의지하는 것이 패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