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공기의 흐름이다. 대기를 이루는 가스 물질의 흐름을 일컫는 말이다.

바람은 일반적으로 공간적 규모, 속도, 원인, 발생지역, 영향 등에 따라 분류한다.

대규모 바람(global winds)으로는 대기 순환류(atmospheric circulation cell)에 존재하는 바람이 있다.

또 제트기류(jet streams)라 불리는 상층대기의 빠른 집적된 공기의 흐름이 있다.

종관 규모(synoptic-scale winds)에서는 중위도 지역의 표층 공기 덩어리의 압력차에 의하여 발생하는 바람과 해륙풍과 같이 지형적 형태의 결과로 나타나는 바람이 있다.

중간규모(mesoscale winds)의 바람으로는 소나기 전선(gust front)와 같이 지역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바람이 있다.

가장 작은 규모의 미소 바람(microscale winds)으로 10~100m 규모로 발생하여 예측할 수 없는 회오리바람이나 순간돌풍(microbursts)와 같은 바람이 있다.

바람을 구동시키거나 영향을 미치는 힘으로는 기압경도력(pressure gradient force), 전향력(Coriolis force), 부력(bouyancy force), 마찰력이 있다.

만일 두 공기 덩어리 사이의 압력의 차이가 존재하면 고기압 영역에서 저기압 영역으로 공기가 흐르게 된다.

행성은 회전함으로 적도에서 멀고, 지표면에서 충분히 높은 영역에서 흐르는 공기는 전향력의 영향을 우선적으로 받게 된다.

대규모의 지구 규모의 바람(large scale global winds)에는 적도 지역과 극지역의 차별 가열에 의한 힘과 행성의 자전에 의한 힘이 가장 큰 구동력(driving force)로 작용한다.

바람은 다양한 풍화 작용을 거쳐 지형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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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만들어진 우울증>은 자연스런 감정을 질병으로 만드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수줍음 같은 소극적 기질을 우울증으로 몰아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미국의 제약, 의료 산업 구조를 파헤친다. 하지만 우울증에 관한 무지가 심각한 우리 사회에서는 섬세한 읽기가 필요하다. 우울증은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아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들은 다른 약은 남용하면서 유독 신경정신과 처방전만은 “의지로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지는 적재적소의 미덕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 의지는 재앙이다. 지나친 의지, “하면 된다. 안 되면 될 때까지”는 목표가 무엇이든 바람직하지 않다. ‘열심’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많아서일까. 내게 ‘열심’은 치열하거나 성실하다는 의미보다 완장 차고 설친다는 인상이 강하다. 환경 파괴는 덤이다.

 

이 책은 수줍음이 어떻게 병이 되었나(원제)를 추적한다. ‘밝고 긍정적인 인상’처럼 무조건 긍정되는 말도 드물다.

 자본주의에 적합한 인간형과 기분(mood)이 있다. 체제는 적응형 인간을 정상으로 본다. 활기는 맹목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된 반면 우울함, 슬픔, 무기력은 부적응 ‘증상’이 되었다. 단조형 감정은 자본의 적이다. 자본은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없다. 글자 그대로 경기는 ‘부양(浮揚)’하는 것이다.

부끄러움, 겸손함, 신중함의 미덕은 후퇴했다. 이 책은 성공을 위해 확신에 차 있으며 사교성이 지나치게 좋은 인간 유형을 찬양하는 시대를 분석한다. 수줍음이 아니라 다행증(多幸症)이 문제라는 것이다. 울퉁불퉁한 사람, 내향적인 사람, 염세주의자, 비관주의자, 소심한 사람이 없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일까.(7장)

 

즐거움 집착 현상은 사색이나 고뇌보다 건강, 출세, 스펙, 힐링에 집중한다. 그렇지 않거나 그런 가치에 관심 없는 사람은 낙오자 취급한다. 뻔뻔 당당형, 자기도취, 근거 없는 자신감에 넘치는 리더들이 많다. 막히는 도로에서, 아니 사회 도처에서 “목소리 크면 이긴다”는 ‘활기’가 넘친다.

 

세월호는 매일 충격의 강도를 갱신하고 있지만 ‘세월호 피로감’은 절정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문제 해결을 방치하고 일을 안 하는 정치권과 관료들이 국민에게 피로감을 준다는 뜻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이 표현으로 비판받아야 할 사람들이, 이 말로 피해 집단이 행복을 방해한다고 불평하고 있다. 당신들 때문에 피곤하다고.

피로감의 출처는 어디인가. 지난 4월16일 이후 사태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누가 할 말을 누가 하고 있는가’라는 피로감이다. 적반하장이 분노에서 가치관의 혼란과 자기 검열을 거쳐, 집단 우울증을 낳았다. 그들이 말하는 피로의 내용을 알고 싶다. 지겨움? 지겨운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무엇이 이토록 정부 여당을 공포에 떨게 하는가 궁금증만 깊어갈 뿐이다. 유병언씨의 죽음(?)을 둘러싼 항간의 다양한 분석들이 대표적인 예다.

 

피로감 언설은 어두운 일은 잊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처럼 얘기한다.

 신문이나 방송도 “따뜻한 소식, 즐거운 뉴스가 많은 세상을 희망해봅니다”는 식의 언급을 자주 하는데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소식은 없다. 뉴스는 정치보다 당파적이다. 사람마다 이해관계, 입장, 위치에 따라 희비가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 괴로운 사실이 어떤 사람에게는 사태의 진전일 수 있다.

어떤 이에겐 평화가 어떤 이에겐 부정의일 수 있다.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건의 효과는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무엇에 대해 걱정하는가”보다 “이 걱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효과적이다.(257쪽)

 

나는 한국 사회가 싫어하는 인간형은 진보나 여성주의 이런 쪽(?)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문제 제기, 정확한 질문이 많은 사람도 공격적이라고 기피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모나거나 어두운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사유는 인간 본성(호모 사피엔스!), 세월호는 영원히 생각할 문제다.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일상이다. 행복 강박을 버리고 비극을 허락하라.

 불안 없는 영혼이 더 위험하다.(319쪽)

 

정희진 여성학 강사

그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
아무도 본 이는 없지만 나뭇잎 가만히 흔들면서 바람은 거기를 지나간다.
그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 아무도 본 이는 없지만 나뭇잎 머리를 숙이면서 바람은 거기를 지나간다.
<크리스티나 로제티 - 바람>

 

쭉 뛰고 또 뛰고 바람을 앉고 현실에서 빠져나오면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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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위대한 희생이나 의무가 아니라,

미소와 위로의 말 한 마디가 우리 삶을 아름다움으로 채우네.

<메리 R 하트먼 -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언제인가. 기다리면 그때가 온다고. 성장미숙으로 있었다는 이유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 지금이 전부이다. 머물러있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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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처세술’ 누구한테 배웠나       이봉수 시민편집인·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유아독존, 아전인수, 교언영색, 당동벌이, 객반위주….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듣고 ‘도대체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고심하며 떠올려본 사자성어들이다.

유아독존(唯我獨尊). 세상에서 자기만 존귀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다. 왕조 시대 군왕의 태도인데, 민주주의 시대 지도자라면 가져서는 안될 기질이다. 잘난 체하기로 제일 유명한 왕은 루이14세쯤 될 것이다. ‘짐은 곧 국가’라고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비슷한 말을 했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설훈 의원의 말투에 개인적으로 기분이 나빴을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자신을 국민과 동일시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것을 알고 기분 나빠진 국민도 있을 것이다.

같은 군 출신이지만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은 결이 꽤 달랐다. 전 대통령은 자기를 많이 닮은 탤런트조차 출연을 금했지만, 노 대통령은 “나를 코미디 대상으로 삼아도 좋다”고 말했다. 권위주의에 길들여진 언론은 그런 대통령을 ‘물태우’라고 조롱했다. 고졸인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언론이 아예 대통령 대접을 하지 않았다.

한국 언론의 병리를 드러낸 보도 태도였지만 대통령이 탈권위주의로 나가는 방향은 옳았다. 약간의 금도만 지켜진다면 정치인에 대한 국민과 언론의 풍자는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 우리나라 예전 탈춤도 그랬지만 정치 선진국에서는 신랄한 풍자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때 검찰이 풍자만화나 걸개그림까지 처벌하기 시작하더니 요즘 들어 우리의 풍자문화는 박정희·전두환 시대로 퇴행하는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에는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까지 선거가 끝나면 ‘공복’이 아니라 큰 ‘벼슬’로 여기고 뻣뻣해지는 이들이 많은데, 말 속에서 그런 태도가 배어 나온다. 진해야구장 건립 취소로 16일 달걀 투척 세례를 받은 안상수 창원시장도 발표문에서 “110만 창원시민의 수장에게 테러를 가한 것은 시민을 모독한 행위”라며 시민의 ‘수장’을 자임했다.

아전인수(我田引水). 자기에게만 이롭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함을 이르는 말이다. KBS 여론조사에서도 세월호 재협상과 수사권·기소권 보장이 훨씬 우세했는데 반대 의견만 수렴해 재협상을 걷어차버렸다. 세월호법으로 설치될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는 유가족 요구를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며 5개월간 침묵하더니 “여야의 2차 합의안이 마지막 결단이었다”며 입법권을 침해했다. 삼권분립을 내세우거나 내팽개치는 것이 자신의 유·불리에 달렸다.

박 대통령은 “국회가 국민에 대한 의무를 행하지 못할 경우 그 의무를 반납하고 세비도 돌려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삼권분립 체제에서 헌법 위반 소지가 있는 대통령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행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 입법부의 권능을 무시하는 것은 탄핵감 아닌가? ‘말도 못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면 대통령 하야 발언에는 여권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나? 박정희 대통령이 10월유신 때 국회를 해산한 것도 국회를 시녀로 여긴 사고방식의 연장선에 있었다.

내각책임제라면 총리는 의회를 비판하고 해산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권한은 총리 자신의 퇴진을 전제로 한다. 함께 책임을 지도록 제도를 발전시켜온 것이다. 세비 반납 발언도 아전인수식이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 사학법에 반대해 두 달간 국회에 나오지 않았을 때 세비를 반납했다면 말발이 선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민생법안은커녕 법안 제출 건수와 출석일수가 모두 꼴찌였다.

교언영색(巧言令色).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꾸며서 하는 말과 꾸며서 짓는 낯빛을 일컫는다. 박 대통령은 5월19일 눈물을 흘리면서 세월호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때의 말과 눈물이 교언영색이 아니었다면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눈물이 턱까지 흘러내리면 가려워서라도 닦기 마련인데 그러지 않은 것은 역시 꾸민 행동이었나?


▲ 유아독존, 아전인수, 교언영색, 당동벌이…
우리는 어쩌다 이런 대통령을 ‘모시게’ 됐나

▲ ‘짐은 곧 국민’ 권위에 대한 도전 용납 안해
원칙도 유·불리 따라 변하고 꾸며서 하는 말 수시로 바꿔
보수신문·방송이 부추기면 대립국면 조성해 난국 돌파


 

정부의 교언영색 중 최신판은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올린다는 발표였다. 국민 건강이 그렇게 걱정된다면 정부가 금연운동을 벌이든지 부탄 왕국처럼 아예 흡연을 금지하면 될 일이다. 노무현 정부 때 담뱃값을 500원 올리려 하자 박근혜·최경환 의원은 반대했다. 그때는 국민 건강을 조금만 위하는 수준이어서 반대했나? 서민 부담이 큰 간접세이지만 세수 확보와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세를 올렸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더라면 애연가들이 뒤틀린 심사를 달래기 위해 애꿎은 담배를 또 태우지는 않았을 터이다.

‘민생 타령’을 하며 세월호 국면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전형적인 교언영색이다.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내걸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강화도 알고보니 ‘감언이설’이었지만, ‘민생’은 공약을 지키는 게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다. 서민들의 삶이 총체적으로 붕괴되고 있는데 일부 서비스업과 부동산의 규제를 푸는 걸로 민생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무능 정권의 밑천을 드러낸 것이다. 학교 근처에 호텔을 짓겠다는 관광진흥법과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 등은 ‘민생법안’이 아니라 ‘민폐법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보수신문과 ‘정권방송’이 ‘우리 경제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내자 정부도 맞장구 치며 세월호 정국 탈출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 세월호처럼 갑자기 침몰했나, 한국 경제에 느닷없이 골든타임이 닥친 이유를 모르겠다. 집권하고 1년반도 넘은 때에….

박 대통령의 재래시장 방문은 박정희 대통령 이래로 써먹어온 교언영색의 수법인데도 먹혀 들어가는 건 왜일까? 정치적으로 대립국면이 고조될 때마다 시장에 가는 건 ‘정치와 초연하게 경제만 생각하는 대통령’이란 이미지를 부각시켜 주기 때문이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주범이다. 재래시장을 찾는 것은 사주는 상품값만큼만 민생에 도움이 될 뿐이다. 정치를 통하지 않고 경제를 살릴 방도는 없다. ‘경제’란 말 자체가 경세제민(經世濟民), 곧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 아닌가.

당동벌이(黨同伐異).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한패가 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물리친다는 말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특별법에 ‘순수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담아야 하고 ‘외부 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을 아군과 적군으로 구분하고 대결국면을 조성해 난국에서 빠져나가려는 발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00%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던 ‘국민대통합’ 약속을 완전히 저버리고 절반가량 지지층만 확실히 안고 가겠다는 태도다. 보수신문과 종편방송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다 지상파 방송도 극우인사들을 방송통신위원회와 KBS 이사회 등에 대거 포진시킴으로써 대국민 심리전 준비를 끝낸 상태다. 이름만 남은 ‘공영방송’의 사장과 요직도 친여 인물로 채워졌다.

객반위주(客反爲主). 손님이 도리어 주인 노릇을 한다는 뜻이다. 세월호 유족들도 국민이지만 국민을 돌봐야 할 대통령은 그들이 헌법체계를 흔들고 경제의 발목을 잡는 ‘국가의 공적’이나 되는 것처럼 매도했다. 박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진상규명에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더니 오히려 대못을 박았다.

박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과 처세술이 체득한 것이든, ‘호가호위’하는 참모들의 농단에 따른 것이든, 언론이 부추긴 것이든, 아니면 합작품이든,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정국에 대한 국민 피로도가 점증하고 야당이 지리멸렬한 틈에 승부수를 잘 던졌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성역 없는 진상규명으로 유족들의 한을 풀지 못한다면, 진심으로 서민을 위한 정책들을 내놓지 못한다면, ‘정신적 내전’ 상태라고 불릴 만큼 편가르기가 심한데 그걸 더 부추긴다면, 언론에 의해 일정 부분 ‘만들어진’ 지지율을 믿고 일방적으로 국정을 밀어붙인다면, 박근혜 정권은 임기말에 참담한 ‘일패도지’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그때 가서는 어떤 사자성어를 떠올릴까?

자승자박, 소탐대실, 인과응보, 진퇴유곡…. 그래도 국민을 위해 ‘사필귀정’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악담이 아닌 쓴소리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구름이 전부 하늘을 가렸다.

바람이 시원했다.

때론 바람이 바람의 기온을 한뼘쯤 더 낮추는데 도왔다.

자전거 타기 최적의 날이었다.

역시 가을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지금은 올수 없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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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그런 그림자가 있었다는 현실

다행이다

천만다행이다

 

다름이 전염병에서 함께 추락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함께가 같음의 병폐임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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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새누리당 등 집권세력은 표정관리하느라 애쓸 것 같다. 연이은 ‘인사 참사’로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대한 불리한 여건이 조성되었음에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이겼다. 잘못은 여당이 해도 심판은 계속 야당이 받고 있다. 야당의 아성 호남에서 박 대통령 측근 중 측근인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넉넉히 당선했다. 정치적 반사이익도 챙기지 못한 제1야당의 지지율은 연일 추락하여 20%대를 겨우 유지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45%를 지켜내고 있다. 진보성향의 장하성 교수도 “새정치민주연합은 현 구조라면 10년 안에는 재집권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국가의 무능’을 만천하에 드러낸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집권세력으로서는 큰 고비는 넘겼다. 세월호 유가족의 절절한 호소를 외면하고 심신을 지치게 만들면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막아내고 있다.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일베 등 몰상식 집단이 앞장서서 가지각색의 행패를 부리며 유가족을 모욕하고 있으니 ‘차도살인(借刀殺人)’ ‘좌향기리(坐享其利)’의 성과도 즐기고 있을 것이다.

한편 법원은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에서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무죄판결을 내려 탄생 초기부터 의심받던 정권의 민주적 정통성을 사후적으로 보완해주었다. 이제 국정원과 경찰의 선거개입에 항의하던 시민들과, 헌정문란 국가범죄와 정면으로 맞붙으며 법치주의를 수호하려 했던 윤석열, 권은희 두 법률가를 몰아칠 근거가 마련되었다.

요컨대 대선 이후 선거를 계속 이겼고 당분간 선거 치를 일도 없는 데다, 무조건 똘똘 뭉쳐 지지해주는 45%가 있는데 야권은 자중지란, 사분오열, 지리멸렬이니 집권세력 입장에서는 잔치를 벌이고 싶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세세손손 ‘이승만과 박정희만의 나라’로 고착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커져갈 것이다. 집권세력이 대선 시기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공약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것, ‘경제 살리기’란 미명 아래 공공부문을 영리화(營利化)하려는 것, 부자감세로 위기에 처한 재정을 서민증세로 메우겠다는 것, 자신들도 합의하여 제정한 ‘국회선진화법’을 이제 와서 개정하겠다는 것 등은 바로 이런 자신감의 발로일 것이다.

이 시점에 박 대통령 등 집권세력의 수장들에게 몇 마디 하고자 한다. 몰락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지금이 절정기라고. 견제세력도 국민적 저항도 미미하니, 남은 것은 “반신반인” 운운하는 아부와 충성 경쟁, 그리고 그 뒷면에서 벌어지는 자리다툼과 부패일 것이다.

옛글을 빌려 말하면, <순자(荀子)>가 말한 ‘국적(國賊)’, 즉 “나라가 잘되고 못되는 것은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교묘히 임금에게 영합하여 구차하게 받아들여져 자기의 녹봉이나 유지하고 사람들과의 사귐만 넓히고 있는 자”, <관자(管子)>가 말한 ‘침신(侵臣)’, 즉 “법령을 훼손하며 사사로이 패거리 짓기를 좋아하고 사사로이 청탁을 행하는 자”들이 창궐할 것이다. 반면 대통령의 언동에 대하여 합당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배신자’로 취급되고 ‘불경죄(不敬罪)’를 범한 것으로 여겨져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한비자(韓非子)>가 말한 ‘망징(亡徵)’, 즉 나라가 망하는 징조도 강해질 것이다. 즉, “군주가 고집이 세서 남과 화합하지 못하고 간하는 말을 거슬러 남을 이기고 싶어하며 경솔하게 자만심이 강한 경우”, “군주가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며 나라가 혼란한데도 자기 자랑만 하는 경우” 등을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다.

한편 내우외환으로 망해가는 듯이 보이는 야권은 차츰차츰 전열을 찾을 것이다. 폐허 속에 새로운 지도력이 형성될 것이다. 현재 여권의 지지율은 여권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권이 못해서이다. 주권자는 야권의 무능함에 실망하고 있지만, 동시에 여권의 뻔뻔함에도 분개하고 있다.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버텨내고 마침내 무너뜨린 ‘능동적 시민’은 항상 새로 태어나고 성장한다.

로마 시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성대한 개선행진을 할 때 바로 뒤에 노예 한 명을 세워놓았다. 그 노예의 임무는 장군에게 계속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당신도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Memento mori), “당신도 한낱 인간임을 기억하라”(Hominem te esse memento). 대선 시기의 마음과 약속을 다 저버렸으나 승리를 구가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이 말을 보낸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골프장 경기진행요원(속칭 캐디) 성추행’ 사건은 우리 사회의 부끄럽고 참담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박 전 의장의 지위가 특별히 높고, 그의 가해 행동이 지나치게 심각하며, 피해자가 남다른 용기를 발휘해 고소했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주변에서는 유사한 피해 상황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여군 장교가 상관의 성추행을 견디기 힘들어 자살하고, 여교사들을 상습 성추행한 교장은 경징계를 받고 만다. 검사는 여자 피의자를 성추행하고, 항공사는 승무원 대상 성추행과 성희롱 승객들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교수의 제자 성추행과 성희롱이 심각한 문제고, 회식 자리 성추행 사건은 점심시간 직장인들의 단골 화젯거리가 된 지 오래다.

왜 이 지경일까? 일부 주장처럼 ‘남자의 성 욕구는 본능적’이고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강해서’일까? 그렇다면 그 본능적 욕구는 왜 늘 높고 강한 사람이 낮고 약한 사람을 대할 때만 발동할까? 한국 남자들이 다른 인종이나 민족의 남자들보다 진화가 덜 된 미개한 인종집단일까? 게다가, 최근엔 여성 상관이나 직장 상사, 혹은 교사들이 남자 신입사원이나 학생들을 성추행하는 사건들도 늘고 있다. 지위가 높아지면 여성 성호르몬이 남성 성호르몬으로 바뀌고 남성적 성 욕구가 생기는 놀라운 ‘생물학적 변화’가 발생하는 것일까? 의학적, 심리학적으로 ‘성(性·sex)’은 대뇌 ‘성 중추’에 의해 통제된다. 발정기에만 성 욕구가 생기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언제든지 인지와 의식, 상상 등의 작용으로 성 중추가 자극되어 성 욕구가 발동될 수 있다. 심지어 노령, 질병, 거세 등으로 인해 기능적으로 ‘성불능’ 상태인 사람도 성적인 환상을 즐기고 다른 사람에게 성적인 가해 행위를 할 수 있다. 심지어 동유럽 체코 공화국에선 물리적 거세를 당한 성범죄 전과자가 연쇄성폭행을 저지르다 검거되기도 했다. 물론,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등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충동과 욕구를 통제하지 못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성도착 환자’들도 있다.

하지만, 권력자 혹은 상급자나 고객 등 소위 ‘갑’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소위 ‘을’에게 저지르는 성희롱과 성추행은 모두 철저히 합리적 선택에 의해 저지르는 범죄들이다. 즉, 개인적으로는 ‘본능’이 아닌 인지와 사고 등 ‘생각’과 ‘습관’이 문제고, 사회적으로는 문화와 관행이 원인이다. 그동안 대기업의 중소기업 혹은 대리점 대상 횡포, 지위가 높거나 많이 가진 자들이 상대적으로 약한 자들을 괴롭히고 착취하거나 폭행하는 소위 ‘갑질’ 논란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성(性) 갑질’이라 할 만하다. ‘성(性) 갑질’이 더 문제인 이유는, 가해 행위가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피해자는 극도로 수치심을 느껴 큰 충격과 긴 후유증에 시달리는 데 반해 신고나 항의 혹은 피해구제 노력을 하기 어렵다는 특성 때문이다. 만약 ‘성(性) 갑질’ 피해 사실을 알리거나 신고할 경우 피해자들을 도와야 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오히려 숨기고 무마하려 애쓰거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가하기도 한다. 가해자들은 이런 피해자들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서로 공유하거나 학습하면서 ‘성(性) 갑질’을 상습적으로 저질러왔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부끄럽고 안타깝게도 누이와 딸과 손녀를 생각하라며 ‘갑들에게 반성과 자각’을 호소해 봐야 효과가 없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을 고소한 용감한 골프장 경기진행요원 같은 ‘을’들의 자기 권리 찾기 노력과 이들의 용기와 노력을 지키고 보호하고 북돋워 주는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이 ‘성(性) 갑질’을 멈추게 해야 한다. ‘발본색원’ ‘4대 악 척결’ 같은 용어는 ‘성(性) 갑질’에 적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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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이 개방한 서울시청 정동 전망대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고 변신하는 덕수궁과 돌담길, 덕수궁 미술관, 석조전의 고풍스러운 모습과 성공회 대성당같은 아름다운 건축물이 들어서 있는 서울시 중구 정동.

이 일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숨겨진 명소가 정동 덕수궁 돌담길가에 있다.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3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이 큰 유리창 너머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곳에서 만나자며 연락을 해 온 지인에게 왜 쌩뚱맞게 서울시청사 건물이냐고 물었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겠다.

청사 13층에 내리면 나오는 작은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큰 창문으로 나타나는 예상치 못한 풍경에 감탄만 삼켰다. 저절로 카메라에 손이 가는 도심 속 멋진 풍경이다. 이곳은 보통 '정동 전망대'라 불리는 공간으로 원래 대회의실과 창고로 사용되던 곳이었단다. 서울시 신청사가 지어지기 전에 이 서소문 청사에서 근무를 했던 박원순 시장이 '공유도시 서울'의 일환으로 개방했단다.

회의실, 창고에서 시민들을 위한 전망 명소로


                                                ▲ 덕수궁과 정동 일대, 뒤로 산자락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정동 전망대.


창가에 앉으면 정동길 주변, 서울시 청사는 물론 뒤로 인왕산과 북악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덕수궁 전경 덕택에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명당 전망대가 되었다.

구한말 순종에게 왕위를 건넨 고종 임금이 주로 거주했던 아담한 덕수궁 전경과 궁궐내 서양식으로 지은 석조전, 고종이 세상을 떠난 함녕전 등이 땅에서 볼 때와는 다른 감흥으로 다가왔다.

덕수궁 돌담길 뿐만이 아니라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고종임금이 황태자(순종)와 1년 간 피신해 있었던 1890년 지어진 구러시아 공사관, 영국 성공회의 지원으로 1926년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한 성공회 성당, 백 년이 넘은 정동제일교회, 특이한 모양으로 인해 시민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서울시 신청사, 옛 서울시청 건물이었던 서울 도서관도 잘 보인다.

서울 도심에서 이렇게 쉽게 고궁과 빌딩 숲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니 처음가본 사람은 누구나 감탄이 절로 나올만 했다. 곧 이어질 단풍의 계절 가을이나 눈 내린 겨울엔 한 폭의 수채화나 수묵화가 펼쳐질 것 같다. 때마다 사진 동호회원들의 필수 출사지가 될만하다.


                                                 ▲ 관광객뿐만 아니라 평일 점심시간엔 인근 직장인들의 인기있는 공간이 되었다.

차 한 잔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풍경과 햇살이 함께 스며드는 창가에 여유롭게 앉아 있다보니 문득 야경도 참 멋지겠다 싶었다. 전망대 카페 직원은 나처럼 전망대에서 펼쳐지는 덕수궁과 정동의 야경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서울시에서 시청사 경비나 안전문제 등을 고려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저녁에 개방하는 것을 실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청의 허가를 받아 이곳에서 야경 촬영 작업을 한 적이 있는 외국 유명 사진가 마이클 케나씨는 "이곳에서의 야경은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보기 힘든 멋진 풍경"이라고 감탄했다니 기대가 크다.

전망대 카페의 벽에는 정동 주변을 담은 흑백의 옛 사진들이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정동 일대의 옛 사진을 보며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덕수궁, 정동제일교회, 프랑스 공사관, 이화학당, 배재학당 등의 옛날 모습이 새롭고 새삼스럽다.

정동 전망대에는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은 카페가 들어서 있다. 장애인을 고용하여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커피나 음료수 가격이 비교적 저렴해서 (2000원~3500원) 점심시간에 찾아오는 회사원들이 많다고 한다. '다락'이라는 카페 이름도 친근하다. 개인컵을 지참하면 500원이나 할인해 주는 착한 카페다. 시청사 안에 있는 카페다 보니 운영시간도 특이하다. 주중 주말, 휴일 모두 오후 6시까지이며, 전망대의 입장료는 따로 없다.

 

 

구름이 가득하다

삐집고 나온 가을햇살이 그저 평화롭다

한걸음 더 가까이 닥아선다

꿈꾸는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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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비정규직 외주노동자들의 슬픈 현실... 사회보장 장치 시급


최근 드러난 유아용 그림책 <구름빵> 작가의 매절계약으로 출판사의 불공정한 계약 관행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출판사의 불합리한 관행은 무명작가의 매절계약뿐만이 아니다. 출판계 비정규직 외주노동자(프리랜서 형태로 일을 하는 편집자, 번역가, 디자이너를 말함)는 상시적으로 저임금, 임금체불, 장시간 노동, 불합리한 업무 지시 등에 시달리고 있다.

'2013년 외주출판노동자 노동실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월 소득 5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는 4.5% 정도지만, 150만 원 미만이 45.9%로 가장 많고, 월 소득 100만 원 미만도 24.1%에 달했다. 종사자의 70%가 월 소득 150만 원 이하의 저임금 상태에 놓인 것이다. 월 25일 이상 노동한다는 비율도 26.3%에 달해 종사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주출판노동자들은 작업비 수령 지연도 수시로 겪는다. 작업물을 완성해 출판사에 넘기면 결제가 바로 이뤄지지 않고, 짧게는 1~2달 길게는 서너 달이 지연된다. 외주 편집자인 K(32)씨는 "이 과정에서 작업비를 독촉하다가 결국 받지 못해 포기하는 비율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노동의 대가를 정상적으로 받지 못하는 전근대적이고 비상식적인 관행이 출판계에 퍼져 있는 것이다.

대다수 외주출판노동자들은 주로 인맥을 통해 일감을 구한다. 일감의 수급구조가 공식적인 시스템이 아닌 이렇게 사적인 인맥을 통해 이루어지다보니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또한 출판 산업의 불황으로 인한 수익구조의 불안정성, 법제도 미비 등이 불합리한 일들을 은폐하고 유지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휴일 없이 일하지만 월평균 수입은..."

 

 



8년 동안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한 전업 번역가의 사례를 들여다봤다. 이 번역가의 사례는 편집자, 디자이너의 것이기도 하다. 지난 5일 인터뷰한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나는 남성이고, 지금 39살 미혼이다. 전업 번역가이다. 지금은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사무실을 하나 얻어 일하고 있다. 4년제 대학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외국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러다가 독립 번역가의 삶을 꿈꾸며 번역 회사에 등록을 했다. 번역 회사는 번역 의뢰인과 번역가를 연결해 주는 곳이다. 거래처가 아직 없는 초보번역가들이 주로 번역회사를 이용한다.

번역 회사에선 의뢰가 들어오면 소속 번역가에게 샘플을 보내준다. 번역 능력을 검증한다는 명분이다. 번역 회사에서 보내준 샘플을 번역해 의뢰인에게 보내주면 의뢰인이 원하는 번역가를 채택하는 것이다. 번역회사에 보내준 내 샘플이 채택되어 첫 책이 나왔다. 번역 회사에서 수수료를 많이 떼가는 통에 손에 쥔 돈은 적었지만, 어쨌든 처음에는 책에 인쇄된 내 이름을 보곤 뿌듯했다. 비로소 내가 번역가가 되었구나. 그때부터 번역가의 낭만적인 꿈은 머지않아 현실이 되리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 그 순진한 생각 이면에 감춰진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휴일도 없이 하루 장시간 일을 하지만, 지금 내 월 평균 수입은 100만 원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구조적으로 문제가 많기 때문에 몇몇 스타 번역가 외에는 대체로 형편이 이렇다. 현실성 없는 번역료 단가에 대해선 이제 말하기도 지친다. 그나마 그것을 깎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번역료를 제때 받지 못해 형편이 어려울 때도 비일비재하다.

아직도 번역료가 들어오는 날이면 잠을 편히 못 잔다.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올까,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서다. 월세 단칸방을 작업실 겸 주거지로 삼은 지도 약 6년이 좀 넘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에게 딱지 맞은 적도 있다. 그나마 나는 미혼이라서 이렇게라도 버티지만 기혼자들은 어떨까? 전업 번역가로 온전하게 가장 역할을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수입 얘기하는 건 솔직히 좀 창피하지만, 나는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되기를 희망한다.

나는 딱히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모든 것에 욕심이 있는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 있다. 변역가란, 내가 원하는 장르만을 선택해 번역하고도 고고하게 생계를 이어갈 만큼 품격있는 일이 아니다.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거다.

나는 그렇게 이름 있는 번역자가 아니라서 한 달에 두 권을 번역하지 않으면 생계 자체가 어려울 지경이다. 20권을 번역했다는 나도 이런데, 초보 번역가는 오죽할까.

출판사가 직접 의뢰할 때는 샘플을 따로 번역하지 않고 바로 계약한다. 작업이 끝나고 원고를 보내면 한 달 후에 번역료의 절반을 받는다. 그후 책 출간일 다음 달에 나머지 전액을 받는다. 출판사마다 계약사항이 천차만별이다. 출간 후 번역료를 다 받는 계약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책이 순로롭게 출간이 되었을 때 얘기다. 출간이 1년, 2년씩 미뤄지는 경우에는 나머지 절반의 번역료를 받기 위해서 수개월, 아니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 와중에 번역료를 일부 또는 전체 떼이는 경우도 많다. 대개 책 출간에 맞춰 결제가 이뤄지기 때문에 번역가는 계획적인 생활비 지출이 어렵다.

​내가 번역을 마친 뒤 3년 뒤에 책이 나온 적도 있다. 지금도 네다섯 권 정도가 출간이 지연된 실정이다. 그래서 번역가들 중에는 당장 생계를 위해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도 많다. 어떤 동료는 나이 마흔에 새벽 편의점 알바를 한다. 막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출판사와의 거래는 연줄이 없는 한 맺어지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번역가들이 불합리한 관행을 겪어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혹시 불이익을 당할까봐서다. 출판사의 나쁜 관행은 결제문제 뿐만이 아니다. 사소하거나 납득할 수 없는 번역의 오역을 트집 잡아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다거나, 무리하게 일정을 짧게 잡아 '몰아치기'를 지시하는 몰상식한 고용주도 많다. 출판사 측의 대리 번역이라는 '사기성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 이건 신예 작가를 죽이는 일이다. 근데 그걸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모르는 사람은 영세 사업체가 그런 불합리한 관행을 많이 행하리라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출판사들의 어이없는 행태도 적지 않다. <구름빵> 작가의 매절계약 문제? 출판계에서 그건 차라리 양반이다. 책이라는 교양을 다루는 곳에서 정작 교양이 실종된 예는 허다하다. 이게 출판계의 이면이다.

지금 내 주변에서 변역가를 직업으로 봐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냥 다시 직장 다니라는 진지한 조언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나는 좋은 책을 만드는 일에 많은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점점 나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 지쳐간다."

예술인 위한 사회복지시스템 운영하는 유럽

이런 문제점들은 출판노동자들의 다양한 네트워크 안에서 수시로 고발된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노동자로서 기본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는 외주출판노동자는 자본주의의 위기 비용을 전가 받으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거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일은 드물다"고 말했다.

유럽의 경우 예술인을 위한 사회복지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는 일반적인 근로자보다 수급자격을 낮추어 특별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독일은 국가와 저작권 사용자가 예술인의 보험료를 절반씩 부담해 이들의 생계를 보호하고 있으며, 네덜란드는 예술인 최저생활보장제도(WIK)를 통해 10년 동안 최대 4년 간 일반복지지원의 70%에 해당하는 보충소득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프리랜서 예술인을 위한 예술인복지법이 2012년에 제정된 이래 지난 8월 17일 개정안이 발효되는 등 조금씩이나마 제도가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첨병인 책을 만드는 외주출판노동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은 여전히 전무한 상태다.

노무사모임의 한 관계자는 "출판업은 산업의 특성상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문화예술과 마찬가지로 보호와 지원이 절실한 분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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