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 아침에 줄이다 진짜 덥다
7월25일
루브르박물관. 개선문. 몽마르트르 언덕등을 다녀왔다
어제 루브르박물관에 10:00전에 도착했지만 인원 초과로 인하여 오늘은 08:20분에 도착. 다행 박물관에 입장 할 수 있었다
그 땡볕에 입장 할 수 있었든 시간은 10:30정도로 2시간을 줄로 줄로 이어지는 줄 앞에선 사람들을 05:00에 왔다고 한다
입장은 09:00정도면 기다림의 인내심이 필요한 듯
대표적인 작품인 모나리자그림은 가품이고 진품은 지하창고에 보관중이란다. 그나마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지문으로 진품을 확인했다고. 과연 어떤것들이 진품인지 가품인지 이 세상살이도 군중들의 표준이 진정성으로 평가되는것이다
루브르가 최초로 박물관이 된 것은 1793년으로, 파리 생활에 싫증을 느낀 루이 14세가 베르사유에 화려한 궁전을 지어 거처를 옮긴 뒤 초기에는 왕실에서 수집한 각종 미술품을 보관 · 전시하는 소극적 의미의 미술 전시관이었으나 나폴레옹이 집권한 이후 수없이 많은 원정 전쟁을 통해 예술품을 매입, 선물, 약탈하면서 대규모 박물관으로 변모하였다.
루브르 미술관의 전시 작품은 크게 인류의 4대 문명의 시원을 나타내는 고고학 유물과 그리스도교 전례 이후의 서양 문명, 중세 예술, 르네상스 예술, 근대 미술 및 극동 지역 미술품으로 나누어진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원래는 바이킹의 침입으로부터 파리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요새였다.
이후 16세기 때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으로 새롭게 개조되었고, 이어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 등 많은 왕족들이 4세기에 걸쳐 루브르 궁전을 확장하고 개조했다.
하지만 루이 15세(Louis XV)가 베르사유로 궁전을 옮기고 나서 루브르는 주인 없는 궁전으로 방치되다가 나폴레옹 1세가 다시 루브르 궁전에 관심을 갖고 미술관으로서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고, 나폴레옹 3세가 1852년에 북쪽 갤러리를 완성하면서 오늘날 루브르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 후 1981년에는 미테랑 대통령의 그랑 루브르(Grand Louvre) 계획으로 전시관이 확장되고 1989년 박물관 앞에 건축가 I.M. 페이(Ieoh Ming Pei)의 설계로 유리 피라미드를 세우면서 대변신을 하게 되었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의 225개 전시실에는 그리스, 이집트, 유럽의 유물, 왕실 보물, 조각, 회화 등 40만 점의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밀러의 비너스(Venus do Milo)
BC 13세기 말 헬레니즘 미술의 걸작품이라 불리는 아프로디테(비너스)를 조각한 것으로 신체 비율이 황금비율로 1820년 그리스 밀로섬에서 발견되었다.
3대 필수 감상작중의 하나인 니케상
BC190년 경 작품으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날개달린 승리의 여신
1863년 북 에게해 사모트라케섬 북동쪽 카비스 신전 돌더미에서 발견되었다
기원전 190년경에 제작된 이 여신상은 몸을 3/4 정도 각도를 튼 형태로 여신이 배에 내려 앉은 상태며 옷의 모양에서 역동성이 느껴진다. 특히 배 부분에서 배꼽이 움푹 들어간 곳의 살집이 인상적이고 얇고 투명한 옷은 바람의 힘에 의해서만 몸에 지탱되고 있다.
머리 부분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데, 배에 막 내려 앉아 날개를 접고 있는 이 여신상은 에게 해의 작은 섬 사모트라케에서 발굴되어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이란 이름이 붙었다. 나중에 손이 발견되어 승리의 여신의 바로 옆에 전시되어 있다.
다 비치의 <모나리자> 프랑소와 1세의 초청에 감사하려 왕에게 선물한 그림 1503년-1510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 판에 그려진 비교적 자그마한 그림인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작품 중 하나이다. 그림 속의 주인공은 부유한 상인의 딸 리자 게라르디니로 후에 지오콘도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작가 본인의 모습을 그렸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뒤로 하고 발코니의 팔걸이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살짝 몸을 틀고 있는 모델은 임신 또는 결혼 등 기쁜 일이 있음을 암시하는 신비스럽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띄고 있는데 아마도 다빈치와 가까운 사이였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 작품 역시 스푸마토 기법으로 자연스러운 효과를 냈다. 다빈치는 이탈리아에서 이 그림을 그렸지만, 훗날 프랑스의 왕 프랑스와 1세에게 팔기 전까지 언제나 가지고 다닐 만큼 애착을 보였던 작품이다.
들라쿠르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대 프랑스 시민을 억압하던 샤를 10세를 몰아낸 후
자유와 평등을 찾기 위해 7월 혁명이 있었다.
커다란 스핑크스(Le Grand Sphinx) 루브르의 이집트 문명 전시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높이 183m, 너비 480m의 대형 작품이다. 머리는 사람, 몸은 사자인 스핑크스의 얼굴은 왕의 모습을 나타냈다. 원래 스핑크스는 그리스어로 괴물이란 뜻이나, 이집트에서는 신전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머리에는 메메스라고 부르는 풀을 먹인 두건을 쓰고 있는데, 사자는 힘을 나타내며 이집트인들에게는 태양의 상징이라고 한다. 스핑크스 위에는 역대 이집트 왕들이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았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20세기의 아메네마트 2세의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과 특히 누구나 보면 알수있는 작품을 자세히 보면서 오후까지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밖은 영상40도를 오르내리면서 걷기조차 힘들어 오후에는 잠시 숙소에 와서 쉬고 18:00이후에 개선문과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시간을 보냈다
튈르리 공원에 있는 카루젤 개선문과 라 데팡스에 있는 신 개선문의 중간에 있으며, 8, 16, 17구의 경계에 있는 이 개선문은 높이가 50m, 폭이 약 45m이다. 1806년 오스텔리츠 전투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건축가 장 프랑수아 샬그랭(Jean-François Chalgrin)의 설계로 세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1812년 러시아 전쟁에서의 첫 번째 패배로 공사가 중단되고, 나폴레옹의 사후인 1836년에야 루이 필립의 요구로 겨우 완성된다.
나폴레옹 1세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 개선문을 살아 있을 때는 통과하지 못하고, 죽은 후 그의 유해가 개선문 아래를 지나서 파리로 귀환해 앵발리드 돔 성당 아래에 매장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독일 점령에서 파리를 해방시킨 드골 장군이 이 문을 통해서 행진하기도 했다. 개선문의 벽에는 장군들의 이름이 새겨졌고, 아부키르 전쟁, 터키에서의 승리, 오스텔리츠 전쟁 등 나폴레옹의 승전 장면들이 여러 개의 조각들로 장식되었다. 개선문이 있는 에투알 광장(La Place de l’Étoile)은 12개의 대로가 별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어서 ‘별’이라는 뜻의 에투알 광장이라고 불린다. 그 대로 중 하나가 샹젤리제 거리이다. 개선문 옥상 전망대에 오르면 에투알 광장의 모습과 더불어 파리 시의 전경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개선문의 전망대 바로 아래에 나폴레옹이 승리로 이끈 전투들이 30개의 방패에 새겨져 있고,
그 바로 아래 샹젤리제 거리에서 바라보는 쪽에는 프랑스 군대가 출정하는 모습을, 뒷면에는 귀향을 조각해 놓았다.
그 아래쪽 왼편 네모난 곳에는 나폴레옹이 1790년 터키 군대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묘사해 두었고,
그 바로 아래에는 1810년 빈 조약을 기념하기 위한 조각으로, 나폴레옹이 승리의 여신에게 월계관을 받는 모습이다.
오른쪽 네모난 곳에는 마르소 장군의 장례식을 묘사해 놓았고,
그 아래에는 1792년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일어나는 시민들의 모습을 조각해 두었다.
미술에 관해 전혀 알지 못했는데 일부라도 직접 볼 수있어 관심이 생긴다
학창시절때 책으로 익히고 외워 시험에 대비하는 것외는 전혀 알지 못했다
세계3대 미술박물관중 내일가는 영국미술박물관에 소장하는 미술품만 보면 ㅋㅋㅋㅋ 세계3대 미술박물관을 섭렵하다니. 과연 따봉이구나